'살 빠진 김정은' 인정한 北... '애민' 통치 띄우며 내부 결속 다지기

입력
2021.06.27 20:00
金 체중 감소 걱정하는 주민 인터뷰 공개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께서 수척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픕네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건강 상태를 언급하는 건 ‘금기’다. 체제 안위와 직결되는 문제여서다. 그러나 최근 북한 관영매체에 김정은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의 ‘수척해진(?)’ 외모를 걱정하는 주민 인터뷰가 등장했다. 북한 당국이 주민 입을 빌려 그의 체중 감량을 공식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의 건재와 ‘애민주의’ 행보를 부각시켜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속내가 묻어난다.

북한 조선중앙TV는 25일 내놓은 ‘국무위원회연주단 공연을 보고-각계의 반향’ 보도에서 22일 TV로 방영된 공연을 접한 주민들 반응을 전했다. 한 남성은 인터뷰 도중 “총비서 동지께서 수척하신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사람들이 다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이 젖어 나온다고 한다”고 했다. 화면에 비친 김 위원장의 체구가 눈에 띄게 줄어든 점을 염려한 것이다. 일반 주민이 김 위원장의 외모를 평가하고, 또 그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최고 지도부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이 ‘살 빠진 김정은’을 인정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우선 굳건한 리더십을 재확인하는 차원이다. 체중이 줄었어도 신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동요하지 말라는 경고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체제의 핵심 변수인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를 오히려 숨길 경우 주민들 사이에 불필요한 루머가 퍼져 지도력에 위협이 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석했다.

김정은식 애민 통치를 강조하려는 목적도 있다. 식량난을 대놓고 인정할 만큼 현재 북한 지도부의 관심은 온통 경제 회생과 민생 안정에 쏠려 있다. 수척한 모습을 자주 공표해 내부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지도자가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일종의 선전전이라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최근 출산을 장려하고 영ㆍ유아에게 유제품 제공 방침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다 확장하면 한미에는 대화 재개가 중요한 이슈지만, 북한은 지금은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실제 노동신문은 27일 “혁명의 시련을 겪어보지 못한 ‘새 세대’가 주력으로 등장했다”며 청년세대의 사상적 해이를 지적하면서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위원장 건강 이상설은 이달 초 열린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손목시계를 한층 조여 맨 모습이 포착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15~18일 진행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3차 전원회의와 20일 국무위원회연주단 관람 행사에서도 그는 이전보다 확연히 날렵해진 얼굴로 등장했다. 지난해 말 기준 140㎏에 달했던 때와 비교해 적어도 1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건강 악화보다는 주민들 시선을 고려한 의도적 체중 감량, ‘다이어트’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김민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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