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일자리 때문에 50명 합반 수업"... 행정·컨설팅 등 교사 업무 다양화해야

입력
2021.06.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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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교사가 부족해서 코로나 시국에 애들을 50명씩 모아 수업을 했어요. 산간오지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 학교에서요. 이게 말이 됩니까?”

지난 22일 서대문구 서울시교육청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던 A사립고등학교 학부모 최모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학교가 과원교사(학급 수에 비해 과배정된 교사) 문제로 교육청과 갈등을 빚으면서 신규 교사를 뽑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사 부족 때문에 몇몇 과목은 합반 수업을 하고, 심지어 교장까지 투입되기도 하면서 해당 과목 성적이 눈에 띄게 하락했다는 설명이다. 이 학교 학부모들은 지난 4월부터 ‘교육청이 과원교사 문제를 해결해달라’며 일주일에 두 번씩 항의 시위를 열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과원교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학교가 생기고 있다. 교사 수는 학급 수에 비례해 배정되는데, 학생 수가 대폭 줄어 잉여 교사도 비례해 늘었기 때문이다. 국공립 중·고교는 학교별 상황을 고려해 교사 전근 조치가 가능하지만, 사립학교의 경우 재단 내 교원 인사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이 때문에 A고교와 같은 문제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주일 4시간 수업인데... 교육부 "과원교사 복직시켜야"

A고교 갈등도 학생 수 감소로 시작됐다. 시교육청은 A고교를 비롯해 상당수 중고교에 수년 전부터 학급 수를 줄이라고 권고했다. 2013년 36학급에서 2018년 31학급으로 줄어든 A고교에는 과원교사 2명이 발생했다. 학급 수로 보면 교사 10명을 줄여야 하지만, 명예퇴직 등으로 구조조정을 한 결과, 그나마 2명이 남았다. 교육청은 이들에게 향후 2년 치 인건비만 지원하기로 했다. 그동안 과원교사는 학교에 필요한 과목으로 전공을 바꾸거나 이직을 준비해야 한다.

교사가 넘칠 때 누구를 과원교사로 남길지 정하는 건 교육청 기준이 없기 때문에 학교 몫이다. A고교 교감은 “학교 인사위원회 세칙에 따라 전공과목 수업시수가 가장 적은 국어 교사(이후 명예퇴직)와 선택과목 B 교사를 과원교사로 결정했다”면서 "B 교사는 퇴직 3개월 전 전공을 바꾸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이미 복수전공 연수 신청 기간이 지나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교육청 인건비 지원이 끝난 2020년 2월 B 교사는 해고(면직처분)됐다.

이후 B 교사는 해고가 부당하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B씨의 손을 들어줬다. 심사위는 "학급 수 감축에 따른 과원 발생으로 교원을 면직하는 경우 임용 형태‧업무 실적‧직무수행능력‧징계처분 사실 등을 고려해 기준을 정해야 한다"며 "지도 시수가 적은 교과순으로 면직 기준을 정한 A고교의 선정은 자의적"이라고 지적했다. B 교사는 면직처분 취소 결정을 받았지만, A고교가 행정소송을 제기해 수업을 못 하고 있다.

문제는 B 교사의 수업을 들을 학생이 실제로 적다는 점이다. A고교 교감은 “B 교사가 가르쳤던 과목은 서울 일반고 중 52.9%가 개설하지 않은 소수 과목”이라며 “우리 학교는 이 과목을 선택수업으로 정했는데, 선택한 학생이 28명밖에 안 돼 일주일 수업시수가 4시간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A고교는 윤리와 한국사 등 일부 과목 교사가 부족한 상태다. 기간제로라도 교사를 새로 채용하려 했지만, 교육청은 B 교사를 복직시키지 않고 새로 교사를 선발하면 인건비를 지원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 학교가 '50명 합반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교육청은 올해 A고교와 같은 재단의 중학교가 신규 채용할 정교사 인건비 역시 B 교사 복직 전에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A고교 학부모 박모씨는 “교사 일자리 보장을 위해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과목을 필수로 지정해 듣게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고교학점제 후 갈등 격화 예상... "교사 수급 방식 달라져야"

학생 수 감소가 교육과정 개편, 고교학점제와 맞물리면 과원교사를 둘러싼 갈등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기존 필수과목이 선택과목으로 바뀌거나, ‘대세’ 선택과목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어 교사 수급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B 교사는 A고교에 교사가 부족한 과목을 복수전공하겠다는 의사를 늦게나마 밝혔지만, 연수 인원(20명)이 채워지지 않아 언제 가능할지 기약이 없다. 수도권의 D고교 교장은 "길게는 2, 3년씩 걸려 복수전공 교원자격을 얻어도 '원래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부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복수전공에 소극적인 교사도 많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학생 수 감소로 수년 내 거의 모든 학교에 비슷한 갈등이 생길 수 있는데, 교육당국이 인사권 침해 소지를 이유로 팔짱만 끼고 있다고 비판한다. 홍섭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은 “교사들이 수업 외에 맡을 보직을 만드는 식의 타협안이 필요하다”면서 “고교학점제 초기에는 학점제 운영 프로그램을 짜는 행정 업무, 신규 교사 컨설팅 등에 교사를 투입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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