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루가 이렇게 예뻤나.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 옛 벼루 소장품전인 ‘해와 달이 부르는 벼루의 용비어천가’를 둘러보고 벼루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일반적으로 떠올릴법한 까맣고 네모난 벼루는 없고, 한 폭의 그림을 담은 정교한 조각의 벼루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전시된 100여점의 벼루의 소장자는 등단 60주년을 맞은 이근배(81) 시인. 시인은 어떻게 하다 수많은 벼루를 모으게 됐을까.
“집안에 학자가 많았는데, 외삼촌이 또 명필이셨어요. 늘 보던 게 벼루니까 좋은 벼루 하나쯤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지요. 당시 최고로 쳤던 중국 단계석 벼루를 월급이 10만원도 안 될 때 100만원에 주고 산 게 시작이었어요.”
1973년 집값의 절반이나 되던 돈을 주고 단계석 벼루를 사게 된 시인은 벼루에 더욱 더 심취했고, 이후 약 50년 간 1,000여점의 벼루를 수집해왔다. 좋은 벼루가 나왔다고 하면 중국, 일본 등 가리지 않고 다녔다. 수 백 만원에서 수 천 만원에 호가하는 벼루를 사기 위해 대회에서 받은 상금을 쏟아 붓고, 돈이 없을 땐 대출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를 ‘벼루에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이 시인은 “고려시대 최영 장군이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고 했는데, 돌 보기를 황금같이 했다”며 웃었다.
이제 시인에게 벼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자고로 문인에게는 좋은 글감이 있어야 하는데, 이 시인에게 벼루만한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시인은 벼루로 80여편의 시를 썼다. ‘신의 손을 가진 조선의 조각가들이 돌 속에다 살과 피를 불어넣어 살아나온 용들이 구름 속을 날고 기고 천둥 번개 치고 3D 아바타로 우주여행까지 시켜준다. 어쩐다?’ 벼루를 향한 시인의 애정은, 벼루를 소재로 한 그의 시 ‘용비어천가’의 일부에서도 느껴진다.
전시된 100여점 중 1점(정조대왕사은연)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 벼루다. 그는 벼루를 모으다 보니, 한국 벼루의 뛰어난 조형미에 감탄하게 됐다고 했다. 실제 전시된 한국 벼루를 보면, 신비감이 들 정도다. 녹두색과 팥색이 절묘하게 섞인 평안북도 위원석으로 만들어진 벼루에는 주렁주렁 열린 포도, 달빛 아래의 매화와 대나무 등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충남 보령에서 채취한 남포석으로 만든 벼루에도 토끼와 거북이 등이 깨알같이 새겨져 있는데, 그 섬세함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이 시인은 “붓과 먹은 소모품이지만 벼루는 오래 간직할 수 있어서 왕실에서 개국공신 등에게 하사품으로 준 것이 지금까지 전해내려 온 것으로 보인다”며 “하나의 조각 예술품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27일 막을 내리지만, 그는 그동안 중국 벼루에 가려졌던 한국 벼루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손재주가 뛰어난데, 그 위상을 다시 확인시켜준 게 벼루에요. 로뎅, 켈란젤로가 와도 똑같이 못 만든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