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연방대법원 “교내 규제보단 '학생 표현의 자유'가 우선”

입력
2021.06.24 18:00
"SNS에 학교 욕한 고교생 치어리더 
 퇴출시킨 학교의 조치는 위법" 판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교생이 욕설과 함께 학교를 비방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해도, ‘교내 활동’ 성격이 있는 이상 이를 문제 삼아 학생을 징계하는 건 위법이라는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학교 교육 활동의 방해 요인에 제재를 가하는 것보다는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가 더 우선이라는 취지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연방대법원은 펜실베이니아주 마하노이고교에 다니던 브랜디 레비(17)가 이 지역 교육구를 상대로 낸 징계 무효 소송에서 8대1 의견으로 원심의 원고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에서 고교생이 표현의 자유 관련 소송에서 승소한 건 1969년 '팅커 남매 판례’ 이후 처음이다.

2017년 5월, 당시 14세로 교내 치어리더 활동을 했던 레비는 학교 대표팀 선발에서 탈락하자 이틀 후 SNS를 통해 ‘분노의 글’을 게시했다. 가운뎃손가락을 올리고 있는 본인 사진과 함께, 학교 등에 대한 욕설(F--k school f--k softball f--k cheer f--k everything) 문구를 써서 올린 것이다. 해당 게시물은 24시간 후 자동 삭제됐으나, 이를 캡처한 스크린샷이 교내에 퍼지면서 논란이 됐다.

학교 역시 게시물을 확인한 뒤, 레비가 교칙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하고 ‘1년간 치어리더 활동 정지’라는 징계를 내렸다. 레비와 그의 부모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징계 무효 소송을 냈고, 1ㆍ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레비의 손을 들어준 진보 성향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은 다수 의견을 대표해 “미국의 공립학교는 민주주의의 요람”이라며 “학교는 미래 세대에게 현실에서 이 격언이 어떻게 공고하게 잘 보장되는지 알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계몽주의 시대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가 남긴 ‘당신이 말하는 내용에 동의할 순 없지만, 당신이 말할 권리는 목숨 바쳐 지킬 것’이라는 격언을 언급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재차 강조했다.

반면, 보수 성향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SNS로 교육 활동을 저해하는 발언을 퍼뜨리는 학생을 규제하려면 학교에 더 많은 권한이 필요하다”고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

다만 학생들이 갖는 표현의 자유 보장 범위와 관련해선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브라이어 대법관은 “학교 밖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것처럼, 교내의 특정 상황에선 규제가 필요할 수 있다”며 “예컨대 특정 개인에 대한 심각한 괴롭힘이나 위협, 학교 활동 참여 규칙의 위반, 학교 보안 장치 침해 등에 대해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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