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피니티, 교보생명 통매각 노렸나...수상한 공정시장가격 산출법

입력
2021.06.24 13:00
18면
교보생명 총가치 따져 FMV 산출...통매각 노린 정황
신창재 회장 지분 앞질러 회사 파는 시나리오 그린 듯
"투기자본의 적대적 M&A 시도" 지적

교보생명과 풋옵션(특정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 분쟁을 벌이고 있는 어피니티컨소시엄(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IMM PE·베어링 PE·싱가폴투자청)이 교보생명을 통째로 매각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지분율 24%에 불과한 어피니티가 지분 34%를 보유한 교보생명 최대주주 신창재 회장의 경영권을 빼앗아 새 주인에게 넘기겠다는 구상은 투기자본의 적대적 M&A(인수·합병) 시도로 분석된다.

교보생명 가치 부풀린 어피니티…통째로 삼키려 했나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과 어피니티 간 풋옵션 분쟁에서 핵심 쟁점은 1주당 공정시장가격(FMV)이다. 풋옵션 행사 때 매입 가격에 해당하는 FMV를, 교보생명은 20만 원 중반대, 어피니티는 안진회계법인에 의뢰해 40만9912원으로 책정했다.

2012년 1주당 24만5,000원으로 교보생명 지분을 사들이는데 1조2,054억 원을 쓴 어피니티가 40만 원대 가격으로 풋옵션을 행사하면 차익 8,000억 원을 가져갈 수 있다.

그러나 검찰 조사 결과 안진회계법인은 어피니티 입맛에 맞춰 FMV를 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어피니티와 안진회계법인을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IB(금융투자) 업계는 어피니티가 차익 극대화를 넘어 신 회장의 지배구조를 흔들기 위해 FMV를 높게 계산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 검찰 공소장에는 안진회계법인이 공정시장가격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주식 가치를 '교보생명 지분 100%를 기준 삼아 8조4,000억 원으로 추산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안진회계법인이 어피니티, 신 회장 지분을 합치고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 교보생명 전체 가격을 따져본 셈이다. 이는 어피니티가 보유 지분 24% 처분 대신 '흑기사'로서 교보생명 통매각까지 노렸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 어피니티 기소…물 건너간 적대적 M&A

최대주주도 아닌 어피니티가 교보생명을 통째로 삼키려고 한 공격적인 계획은 어떻게 나왔을까. 어피니티는 교보생명과의 법적 분쟁에서 승소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 적대적 M&A를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교보생명과 어피니티 간 격차가 큰 FMV는 현재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의 판단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어피니티가 교보생명에 이기면 풋옵션 행사 명목으로 신 회장 지분을 일부 이전 받을 수도 있다.

어피니티가 풋옵션을 가진 다른 사모펀드 어펄마캐피털 등 교보생명에 비우호적인 주주를 우군으로 확보하면 신 회장 지분을 앞질러 통매각도 가능해진다. 실제 2019년 4월 KB금융지주의 교보생명 인수설이 M&A 시장을 달구기도 했었다. 당시 교보생명은 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어피니티 뜻대로 교보생명 통매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검찰 기소를 감안하면 ICC 재판 과정에서 어피니티 측 FMV가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은 작아졌기 때문이다. 신 회장 입장에선 공정시장가격이 40만 원에서 낮아질수록 풋옵션 대금 지급을 위해 처분해야 할 주식 역시 줄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게 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어피니티와 안진회계법인이 공정시장가격을 높게 잡은 건 투기자본이 적대적 M&A를 시도해 교보생명과 임직원의 생존권을 위협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IMM프라이빗에쿼티, 베어링PEA와 싱가포르투자청으로 구성된 어피니티는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의 교보생명 지분 24%를 샀다. 대신 어피니티는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이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을 경우 행사할 수 있는 풋옵션을 받았다. 교보생명 IPO가 미뤄지자 어피니티는 풋옵션을 발동했고 결국 법적 분쟁까지 갔다.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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