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떠난 아프간에 무혈입성하는 탈레반

입력
2021.06.21 18:25
두 달 채 안 돼 400개 지구 중 50여 곳 장악
"정부 지원 못 받는다" 좌절감… 항복 속출
가니 대통령, 25일 방미해 안정화 방안 논의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급속도로 잠식하고 있다. 미군이 떠나며 생긴 공백을 정부군이 제대로 메우지 못하면서다. 여름이 되면 탈레반의 공세가 절정에 달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0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지 보도를 인용해 주말인 전날과 이날에만 387개 아프간 지구 중 24곳이 탈레반에 의해 점령됐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미군이 공식 철수를 시작한 지난달 1일 이후 두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탈레반이 장악한 지구는 50곳이 넘는다. 전체 지구의 13% 정도다.

최근 탈레반이 공격을 가한 지역은 북부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탈레반이 이날 각각 쿤두즈주(州)와 파리아브주의 주도인 쿤두즈와 마이마나에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쿤두즈 지방의회 의원인 암루딘 왈리는 NYT에 “곳곳에서 울리는 총성 탓에 도시 전체가 공황 상태”라고 했다.

대부분 승부는 보나마나다. 외신에 따르면 이미 상당한 전력을 아프간 밖으로 내보낸 미군이 교전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아프간 정부군은 수도 카불만 방어하기에도 힘이 모자라다. 정부군 지원을 못 받는다는 사실에 좌절한 지구의 항복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북부 타카르주의 경우 주말 동안 5개 넘는 지구에 탈레반이 사실상 무혈입성했다.

미국 주선으로 지난해 9월부터 카타르 도하에서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반군 간에 평화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탈레반 세력 확대를 저지하는 데에 별 소용이 없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파젤 파즐리 아프간 대통령 비서실장은 WSJ에 “7~9월이 가장 치명적인 기간이 될 것”이라며 “탈레반은 더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들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50% 이상 철군 작업을 진척시킨 미군은 9·11 테러 20주기인 올 9월 11일 전에 이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탈레반은 기세등등하다. 공동 설립자이자 부지도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는 21일 발표한 성명에서 “진정한 이슬람 체제만이 아프간의 모든 이슈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음악, TV 같은 오락이나 여성의 사회 활동이 통제되는 1996~2001년 집권기 ‘종교 국가’로 아프간을 되돌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반면 아프간 정부는 설상가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까지 폭증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만 해도 20~40명이던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2,000명을 오르내리는 상태다. 국제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20일 신규 확진자 수는 1,927명이다.

기댈 곳은 여전히 미국뿐이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25일 백악관을 방문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뒤 백악관을 찾는 세 번째 국가 정상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아프간 안정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 견제에 온 힘을 쏟아부을 참이다. 하미드 카르자이 전 아프간 대통령은 20일 미 AP통신 인터뷰에서 “미국이 아프간을 재앙 속에 방치하고 떠난다”고 원망했다.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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