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강경파 대통령 당선 하루 만에... 핵합의 복원 협상 중단

입력
2021.06.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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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과의 조율' 이유로 일단 중단 선언
"타결에 근접했지만, 정치적 쟁점들 여전"
이란 새 정권도 협상 자체 뒤엎진 않을 듯
"타결시점은 8월 라이시 취임 이후 가능성"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이란 강경파 이슬람교 원리주의자의 대통령 당선은 이란 핵합의(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 복원 협상에 막판 변수로 작용했다. 이란 대선 결과 발표 하루 만에 이란과 서방 당사국들이 협상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당초 이달 중으로 점쳐진 협상 타결도 이란의 새 정권이 출범하는 8월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란과 핵합의 당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독일 등 6개국 협상 대표들이 모여 6라운드 협상을 재개했다. 이번에야말로 ‘핵합의 복원’ 타결에 이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으나, 당사국들은 이날 접촉 후 ‘본국과의 조율’을 이유로 일단 회의 중단을 선언했다.

물론 결렬은 아니다. 중재역인 유럽연합(EU)의 외교관 엔리케 모라는 회의 직후 “협상 타결에 근접해 가고 있지만, 여전히 다다르지 못했다”며 “기술적 문제를 보다 명확히 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문제가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회의를 중단했다”고 전했다. 미하일 울리야노프 러시아 대사도 “정치적 결정이 필요한 몇몇 쟁점만 남긴 상태”라며 “열흘 안에 대표단이 빈에 모여 마무리 협상을 하고 7월 중순까진 최종 합의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3개국은 성명을 통해 각 당사국에 빠른 정치적 결단을 촉구했다.


문제는 합의 성공의 키를 쥔 미국과 이란이다.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에서 각각 정권이 교체되며 정치적 셈법이 달라진 것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13일 강경파 유대교 원리주의자 나프탈리 베네트 총리가 주도하는 새 연립정부가 들어섰고, 18일 치러진 이란 대선에서도 대미 강경파인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후보의 당선이 전날 확정됐다.

미국의 우방이자 전략적 동맹 관계인 이스라엘은 미국을 향해 대이란 제재 수위 상향을 요구하고 있다. 베네트 총리는 이날 첫 각료회의에서 “라이시의 이란 대통령 당선은 세계 강국들이 핵합의 복원 이전에 현실을 자각하고, 그들이 누구와 함께 일하는지를 깨닫는 ‘마지막 경고음’이 될 것”이라며 “‘테헤란의 사형집행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갖게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날 ABC방송에서 “이란과 당사자국 간에 제재 및 준수사항 등 핵심 이슈에 대해 좁혀야 할 거리가 상당하다”며 “대이란 제재 중 어떤 걸 먼저 풀지도 아직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8월 초 새 정부가 들어설 이란의 속사정도 복잡하다. 현 정권 입장에선 하산 로하니 현 대통령 임기 내인 7월 중 핵합의 복원을 매듭짓는 게 시급하지만, 새 정권으로선 협상 주도권을 다시 잡기 위해 되도록 시간을 끄는 게 유리하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부 차관은 테헤란타임스에 “라이시의 외교 정책은 국제협력을 중시하면서 현실주의, 상호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핵합의 복원 협상에서도 이런 태도가 반영될 것”이라고 했다.

타결 직전까지 간 만큼, 핵합의가 예정대로 복원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다만 그 시점은 8월 이후일 가능성이 크다. 뉴욕타임스는 “이란의 새 정권은 핵합의 복원 협상 타결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득이 많아 협상 자체를 뒤엎진 않을 것”이라며 “새 정부가 핵합의 복원을 성사시키면 온건파에 대해 ‘서방세계에 굴복해 경제위기를 초래했다’고 비난할 수 있고, 대이란 제재가 풀려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면 대중적 지지도 얻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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