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판이 바뀌었다... 시즌제부터 주1회·4부작도

입력
2021.06.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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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넷플릭스 OTT 영향 시청 패턴 변화
"드라마 다양화로 콘텐츠 토양 풍부해지는 장점"

"오래 본 친구인데... 좋아하게 됐어. 고백하면 살짝 어색해질 것 같고, 그렇다고 이번에도 고백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고, 어떡하지?"

고민 상담을 빙자한 익준(조정석)의 고백은 성공할까. 지난해 5월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 마지막회는 익준-송화(전미도) 커플이라는 대형 떡밥을 던진 채 마무리됐다. 이들 커플에 대한 염원이 모인 듯 지난 17일 1년여 만에 돌아온 '슬의생' 시즌2 첫방송은 시청률 10%를 찍었다. 역대 tvN 드라마 첫 방송을 통틀어 가장 높은 시청률이다. 강력한 사건이나 반전 없이도 시즌1에서부터 이어지는 캐릭터와 인물 간 관계성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다. 처음부터 시즌제로 기획한 '슬의생'의 전략이 통한 것이다.


드라마 시장 판이 바뀌었다... 막장극도 시즌제

시즌제 드라마는 더 이상 미국 드라마(미드)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장르물부터 막장 드라마까지, 국내서도 장르를 불문하고 시즌제 드라마가 대세가 됐다. 이달에만 '슬의생2'를 비롯해 SBS '펜트하우스',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2', tvN '보이스 4' 등 4편의 시즌제 드라마가 방영 중이다.

시즌제 드라마가 국내서도 빠르게 안착한 데는 시청 패턴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시청자 안목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필두로 거대 자본이 투입된 양질의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TV 편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미드를 많이 보면서 국내서도 시즌제가 익숙해졌고, OTT 영향까지 겹쳐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다"며 "신작보다 화제 몰이에도 유리하고, 드라마가 다양화되는 건 전체 토양을 풍부하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봤다.

시즌제 드라마는 그 어느 때보다 콘텐츠가 돋보여야 하는 시대, 방송사가 내놓은 노림수다. 박정연 CJ ENM IP 운영팀장은 "확보된 인프라와 캐릭터를 가지고 스토리를 만들기 때문에 제작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고, 해외 판매 시에도 레퍼런스가 확실하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며 "콘텐츠의 팬덤뿐 아니라 '믿고 보는 드라마'를 만드는 채널에 대한 선호도 역시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주 2회·16부작 편성은 옛말... "양보단 질로 승부"

시즌제뿐 아니라 주 2회, 16부작으로 대표되는 미니시리즈의 편성 공식도 깨진 지 오래다. 일주일에 한 번 방영한 '슬의생' 이후 주 1회 편성도 자리를 잡았다. '슬의생2'는 매주 목요일만, '펜트하우스3' 역시 금요일 하루 방영한다. 드라마 한 편당 회차도 천차만별이다. 최근 종영한 MBC '목표가 생겼다'는 4부작, KBS '오월의 청춘'은 12부작이다. 지난 19일 시작한 JTBC '알고 있지만'은 10부작. 신원호 PD는 '슬의생2' 제작발표회에서 "제작 환경이 바뀌면서 노동 시간이 줄고, 제작비가 치솟는 상황에서 드라마도 새로운 포맷이 나와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며 "주 1회 편성의 장점을 체감했기에 주 2회 편성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 다양해졌다는 점에서도 장점이 더 크다. 보다 과감하고 밀도 있는 전개가 가능해진다. '오월의 청춘'의 이강 작가는 "불필요한 이야기로 회차를 늘리기보다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간결하게 전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12부작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목표가 생겼다'를 연출한 심소연 PD는 "포맷과 볼륨이 다양해진다는 건 그만큼 다룰 수 있는 이야기가 다양해진다는 뜻"이라며 "기존 16부작이나 20부작 편성으로는 다루기 어려운 소재도 편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일단 다양한 길이로 편성한 후 반응을 살펴 시즌제 제작으로 이어가는 편을 택하겠다는 게 방송가 분위기다. 드라마 완성도를 높이고 안정적인 제작 기반을 만드는 데도 유리하다. 박정연 팀장은 "편성은 회차, 편성 횟수, 듀레이션(재생 시간) 등을 고정하지 않고, 드라마 특성에 따라 유동적으로 마련하고 있다"며 "16부작이라는 형식에 맞추기 위해 스토리나 캐릭터 개연성이 떨어지는 드라마는 시청자의 선택을 받을 수 없는 만큼 콘텐츠에 최적화된 다양한 편성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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