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유명인' 박연미 "채식 못해 힘들다는 미국인, 자유 가치 몰라"

입력
2021.06.15 18:00
폭스뉴스 인터뷰 미국 사회 향해 거침없는 비판
"미 대학, 비판적 사고 대신 억압...북한 교육 같아"

북한 출신으로 15세 때 일가족이 탈북해 남한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유명 인도주의 운동가 박연미씨가 폭스뉴스에서 미국 대학 문화를 "북한을 연상케 하는 억압적 문화"라고 토로해 논란이 일고 있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2014년 미국으로 이주해 2016년 컬럼비아대로 진학한 박씨는 대학 교육을 두고 "많은 재화와 시간, 힘을 들여 생각하는 방법을 익히려 했지만, 그들은 내게 생각을 강요한다"며 "미국은 다를 줄 알았지만, 북한에서 본 것과 비슷한 것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박씨가 미국 교육과 문화의 '정치적 올바름'이 문제라며 털어 놓은 경험은 크게 세 가지다.

①우선 박씨는 제인 오스틴과 같은 고전 소설을 좋아한다고 했다가 한 교원으로부터 "옛 소설가들은 인종주의적이고 식민지적 사고 방식을 강요한다"는 꾸짖음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②두 번째는 자신을 성 중립적인 3인칭 단수 'they'로 불러달라고 요청하는 이들에게 혼란을 느꼈다는 부분이다.

박씨는 "영어는 내 제3언어다. 지금도 he와 she가 헷갈리는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they라고 불러달라고 주장한다. 그걸 내 문장에 어떻게 반영하냐"라면서 "혼돈 그 자체였다. 문명의 후퇴처럼 느껴졌다. 북한도 이 정도로 미치진 않았다"라고 했다.

③마지막으로 그는 아이비리그 재학생들이 채식을 하기 어렵다며 억압받는다고 토로하는 것을 보고 "난 북한에서 사랑과 자유의 개념을 몰랐다. 이들은 자유롭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다른 부분에서 북한의 교육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주입식인지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미국 교육도 이와 비슷하다고 했다. 그는 "미국의 고등교육 기관은 사람들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박탈한다"며 "북한에서 이뤄지는 일이 똑같이 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 교육 과정 자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억압적인지에 대해서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는 "교수와 학생들과 다투면서 결국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해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고 주장했다.

이런 박씨의 경험담에 대해 미국 네티즌들은 "북한 출신이라면 서구적 가치를 내면화하는 것이 익숙지 않을 수 있다"는 동정 섞인 반응을 보였다.

다른 네티즌들은 "여전히 북한보단 자유로운 것 같다"거나, 미국 대학의 '소수자 지원 정책(affirmative action)'을 염두에 둔 듯 "이 사람이 미국 대학을 다니는 건 민주당 자유주의자 덕 아니냐" 등 조롱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박씨는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다. 박씨의 여러 회고를 종합하면, 그는 부친이 조선노동당원이자 지역 공직자로 일하던 유복한 가정에서 살았지만, 북한이 경제난에 빠지면서 부친이 불법 거래에 가담했다가 강제 노동형에 처해지는 등 상황이 나빠지자 가족이 함께 2007년 압록강을 넘었다.

이후 중국에서 숨어 살다가 몽골을 거쳐 2009년 한국에 정착했으며, 2014년 다시 미국으로 이주했다. 2015년 '살기 위하여'라는 회고록을 내기도 했고 전후로 꾸준히 강연에 나서 북한과 탈북 과정에 자신이 겪은 고난의 경험을 구술했다.

다만 그를 인터뷰한 언론인이나 다른 탈북자 등은 박씨의 구술 내용이 늘 바뀐다고 지적하며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일부 탈북자는 "다른 사람의 사례를 자신의 것처럼 인용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박씨는 그의 문제점을 지적한 외교전문지 '디플로매트'의 기사에 "영어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오해를 빚었다"고 했으며 "어릴 적의 기억이 완전하지 않아 이를 다시 확인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씨의 회고록 작성을 도운 언론인 메리앤 볼러스는 박씨가 기억의 혼란을 겪고 있으며, 이는 탈북 과정에서 겪은 고난과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변호했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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