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8차 사건 격무 시달리다 극단 선택 박일남 경위 ‘순직’ 인정

입력
2021.06.1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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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동의 땐 국립현충원 안장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등 사회적 이목을 끈 수사팀에 연달아 배정돼 격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경찰관의 죽음이 순직으로 인정됐다.

10일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인사혁신처는 2019년 12월 19일 수원의 한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 광역수사대 소속 박일남(당시 44세) 경위에 대해 공무상 사망을 인정해 최종 순직 처리했다.

이번 순직 인정에 따라 박 경위는 경감으로 1계급 추서되고 유해는 유족 동의에 따라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박 경위는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중 ‘8차 사건’을 맡아 수사하던 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8차 사건은 경찰의 강압적이고 부실한 수사로 당시 무고한 청년이었던 윤성여(54) 씨가 범인으로 특정돼 재판에 넘겨져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사건이다.


윤씨는 박 경위에 대해 고마움과 신뢰를 보냈다. 박 경위가 숨지자 당일 장례식장에 조문을 하고 8차 사건의 진범이 이춘재로 밝혀진 뒤 자신이 청구한 재심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을 때는 “저에게 꼭 일을 해결하시겠다고 말씀했던 박 경위께 감사하다”고 소회를 전했다.

박 경위는 이춘재 8차 사건 수사를 맡았던 선배 경찰관의 강압수사 등 비리를 밝히는 데 투입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월평균 초과근무가 90시간을 넘는 격무에 시달리며 제대로 귀가조차 하지 못했다.

고인이 숨진 2019년 12월에도 19일간 하루 8시간 기본근무에 더해 72시간의 초과근무를 했고, 바로 전달인 11월에도 초과근무가 142시간에 달했다. 같은 해 경기남부청 전체 직원의 평균 초과근무 시간이 54.1시간인 것과 비교하면 3배에 이를 정도다.

박 경위는 8차 사건 외에도 전국적으로 주목도가 큰 사건 전담 수사를 맡아왔다. 2018년 5월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성폭력 사건을, 같은 해 11월엔 ‘웹하드 카르텔’과 엽기행각을 벌인 양진호 당시 위디스크 회장 사건 수사를 담당했다.

경찰 관계자는 “박 경위가 주요 사건 수사를 맡을 당시 짧게는 10일, 길게는 몇 달 동안 집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수사 도중 과로로 쓰러지는 일도 한두 차례 있었다”며 “가족을 잘 돌보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이슈 사건 수사에 대한 정신적 중압감이 상당했던 것으로 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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