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된 미·중 간 갈등 속에 살아 남기 위해선 우리 기업과 정부도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여야 한다."
더 이상 시행착오나 머뭇거릴 시간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갈수록 심화되는 미·중 간 글로벌 패권 전쟁 속에 추구해야 할 생존 전략을 묻는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일관됐다. 특히 해법은 민관의 지혜에서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심화된 미·중 간 대립 속에 기업과 정부가 함께 구성해야 할 '트윈 컨트롤타워'는 필요충분조건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이 발표한 4대(대용량 배터리, 반도체 의약품, 희토류) 핵심 분야의 공급망 대응 방안을 풀어본 전문가들의 견해는 그랬다. 이들은 트윈 컨트롤타워의 주도 아래 △미국 첨단산업 주도 전략 최고 파트너 유지 △국가·산업별 친미·친중 전략 및 대응체계 구축 △미·중 디커플링(탈(脫)동조화)·글로벌밸류체인(GVC) 재편 맞춤 투자 확대 등에 주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0일 경희권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과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 김태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전략팀장 등에게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전략 및 향후 전망 등에 대해 들어봤다.
"미국은 공급망 강화를 통해 반도체뿐만 아니라 첨단산업의 가치사실을 미국 위주로 가져가겠다는 것을 공표한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미국에서 신기술 표준·시장 선점을 위한 도전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미국의 공급망 전략을 바라본 경 부연구위원은 향후엔 우리 기업들도 공격적인 자세로 임해야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이 내세운 자국 우선주의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공급망 재편 보고서는 표면적으로 미국과 동맹국의 연합전선 구축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미국 내 제조기반 강화를 통한 가치사슬과 지식축척, 인재양성, 중소기업 육성 등을 노리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경 부연구위원은 "미국은 인공지능(AI), 5세대(5G) 통신, 방위산업, 우주항공, 로봇 등의 가치사슬 주도권을 갖기 위해 반도체 육성에 나서는 것"이라며 "우리 기업들도 미국의 글로벌 첨단산업 공급망 재편에 협력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에, 현재 최고 생산(파운드리)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유지·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런 전략 속에서도 우리가 챙겨야 할 부분 또한 분명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 교수는 "현재 산업 변화를 보면 투자를 해야 하는 시점인데, 미국의 공급망 재편은 우리 반도체, 배터리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미국은 원천기술에 강하고, 한국은 생산기술이 뛰어난데 이번 기회를 통해 협력 가능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김 팀장은 이번 미국 정부의 정책으로 기회보다 위기 요인이 더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에서 발표한 핵심산업 4개 모두가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비중이 높은 것들이기 때문에, 단순히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 국방, 통상 등 모든 것이 걸려있다"며 "미국에서는 우리 기업들에 중국 수출·입 비중을 줄이라고 압박하고, 중국은 과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과 같은 제재를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팀장은 특히 기회를 살리면서도 위기를 피하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이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팀장은 "기업들의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지속되겠지만, 중국에 대한 투자는 과거처럼 크게 진행될 가능성이 낮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기업과 협의를 통해 동일한 방향성을 갖고서 대응해야 경제, 정치, 통상, 국방 등 전체적인 분야에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 부연구위원은 역시 이런 진단에 동의했다. 무엇보다 공급망 관련 의사결정 기구나 대응 체계를 상시 구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 부연구위원은 "국제 상황은 톱니바퀴가 돌아가듯이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을 탈 수밖에 없다"며 "다만 미중 갈등 구도 속에서 긴급 현안이 발생하면 시의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최고회의 기구 등을 갖추면,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이번 공급망 강화 정책은 무엇보다 GVC 재편을 불러올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특히 제조시설의 탈중국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으로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시설과 대기업의 투자는 미국으로 집중될 것이고, 중국에 있는 우리 기업들의 중간재 생산 시설은 30%가량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한국 등으로 이동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중국 정부의 눈치를 많이 보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중국 고립 정책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공급망 재편과 관련해서 추진 중인 '미국 혁신 및 경쟁법(USICA)'의 중요성도 눈여겨볼 부분이라고 지목했다. USICA에 따르면 첨단산업의 패권을 중국으로부터 가져오기 위해 1,000억 달러(약 110조 원) 규모의 기술 투자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마련될 예정이다. 경 부연구위원은 "미국은 사실상 과학기술 경쟁력에서 중국을 꺾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미국의 주도권이 공고히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은 미국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