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20여 년간 지속된 미국과 러시아의 협력 산물인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제재로 러시아의 우주 로켓 발사가 차질을 빚으면서 러시아의 항공우주 산업 발전이 가로막혔다는 이유다. 미국이 제재를 해제하지 않는다면 이후에 벌어질 일들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 대표는 7일(현지시간) 러시아 하원(국가두마)에서 열린 서방의 러시아 제재와 관련한 청문회에서 “미국의 제재로 위성 발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로고진 대표는 “제재로 인해 특정 마이크로칩을 구매할 수 없으며, 거의 다 조립된 우주선을 발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로스코스모스 계열사인 중앙기계제작연구소와 프로그레스 로켓우주센터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로고진 대표는 제재 해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ISS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놨다. 그는 “(계열사 두 곳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가까운 시일 내에 해제되지 않는다면 러시아의 ISS 철수는 미국의 책임”이라며 “우리와 협력하고 싶으면 당장 제재를 해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 고위 당국자가 서구의 제재로 특정 산업의 발전이 가로막혔다고 인정한 드문 사례”라고 로고진 대표의 발언을 평가했다.
로고진 대표가 언급한 제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을 단 1개월 남겨놓은 지난해 12월 로스코스모스 계열사 두 곳이 러시아 군과 관련이 있다며 미국 기업들이 이들 회사와 거래할 때 사전 허가를 취득하라고 명령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 당시 미국 상무부 역시 이들을 포함한 러시아 기업 45곳을 대상으로 제재를 부과한 바 있다.
정권은 교체됐지만 미국의 러시아 압박은 계속되는 모습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러시아에 대한 제재의 끈을 바짝 조이고 있다. 러시아 반(反)정부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를 목표로 한 독살 시도에 대해서 바이든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살인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인권’을 문제 삼은 셈이지만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등 팽창 야욕을 잠재우려는 목적이 깔려 있다는 평가다.
다만 아직 우주공간에서의 양국 협력 가능성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고진 대표는 이날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 인터뷰에서 오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에서 미국 항공우주국(NASAㆍ나사)이 역할을 해 줄 것을 촉구했다. 로고진 대표는 인터뷰에서 “빌 넬슨 나사 국장과 지난 4일 전화 통화를 했다”며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주 문제가 언급되는 경우 나사가 이 과정에서 수동적 관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넬슨 국장은 이에 앞서 3일 CNN 인터뷰에서 수십 년 동안 미국과 러시아가 우주에서 협력해 왔다며 “협력이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