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현금 꺼리고 비접촉 결제 급증... 조폐공사는 "부업 중"

입력
2021.06.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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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전통시장서도 현금 찾기 힘들어
화폐 발행 3년 만에 2조2,000억 감소
코로나로 화폐 사용 기피 분위기 한몫
상품권·외국돈 제작에 기념주화 판매도

신용카드가 물꼬를 튼 '현금 없는(캐시리스) 사회'가 날로 진화하는 전자결제 시스템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거치면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누가 사용했는지 알 수 없는 현금이 접촉을 꺼리는 코로나 시대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접촉 결제' 증가로 빨간불이 켜진 조폐공사는 신용카드 제작, 상품권 인쇄는 물론 외화까지 찍어내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2일 저녁 대구 칠성시장 야시장. 선선한 바람이 불던 야시장의 이동식 매대 앞에서 2,000원이나 5,000원 등 소액 주문을 하는 시민들조차 대부분 신용카드나 휴대폰과 연결된 페이 시스템으로 계산했다. 매대에도 카드, 온누리상품권, 제로페이 등이 가능하다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었다. 어떤 곳은 안내문구가 간판보다 큰 곳도 있었다. 칠성시장 인근 경북 경산에는 돈을 찍어내는 한국조폐공사가 자리잡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처럼 현금 구경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야시장을 찾은 남준구(32)씨는 "전통시장서도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어 편리했다"며 "지갑에 현금 넣고 다니지 않아도 살 수 있겠다"고 말했다. 남씨는 평소에도 누구 손을 거쳐온 것이지 알 수 없는 지폐 만지는 일을 꺼려하던 참에, 코로나 사태로 현금과는 더욱 거리를 두고 있다.

고경옥 칠성야시장 상인회 대표는 "현금을 꺼리는 손님들 때문에 카드와 페이결제가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며 "현금이 마지막으로 통용될 법한 전통시장에서도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금 좋아하는 영세상인들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은행 통계도 이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국내 총 화폐 발행량은 2017년 38조6,455억 원에서 지난해에는 36조4,725억 원으로 감소했다. 특히 5만 원권을 제외한 화폐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5만 원권은 같은 기간 25조5,804억 원에서 25조2,154억 원으로 발행량이 소폭 줄었지만, 1만 원권은 12조2,278억 원에서 10조7,345억 원으로 급감했다. 5,000원 권도 3,882억 원에서 2,302억 원, 1,000원권은 4,491억 원에서 2,922억 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주화는 더 심각하다. 500원 동전은 314억 원에서 173억 원, 100원 동전은 157억 원에서 59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국내 화폐 생산을 책임지는 조폐공사 일감이 그만큼 줄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가 부업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경산조폐창'으로 불리던 이곳에서는 수표와 우표에 이어 주민등록증, 각종 신용카드까지 찍어내고 있다. 여권과 기념메달, 지역상품권은 물론 외국돈까지 제작해 수출하고 있다. 자체 쇼핑몰에서는 국내 유명 드라마 주인공을 모델로 한 주화도 등장했다. 수요가 있는 곳에 무엇이든 공급하겠다는 자세다.

한국조폐공사 관계자는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화폐가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전통 주력사업인 화폐 생산이 줄고 있어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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