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사와의 전속 계약을 해지한 가수가 자신이 직접 작곡한 노래들의 MR(반주 음악) 파일을 회사 동의 없이 내려받았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까. 해당 소속사가 ‘제작자 권한 침해’라며 한솥밥을 먹었던 가수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1·2심과 대법원의 판단은 엇갈렸다.
문제의 소송 당사자는 1인 전자음악 밴드인 ‘에피톤 프로젝트’의 차세정(37)씨, 그리고 그의 과거 소속사였던 인디 레이블 파스텔뮤직이다. 2016년 11월 파스텔뮤직은 경영난 탓에 소속 가수들 음원 1,688곡의 ‘마스터권’(녹음된 음악에 대한 권리)을 벅스뮤직에 양도하는 계약을 맺었다. 차씨는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선 전속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회사는 정산금 6억 원을 일시 지불하면서 계약 해지에 합의했다.
양측 간 다툼은 그 이후 발생했다. 전속계약을 해지한 지 열흘쯤 지나서 차씨가 소속사 내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MR파일을 회사 동의 없어 자신의 외장하드에 복사해 간 것이다. 게다가 차씨는 이 파일을 이듬해 야외 공연에서 두 차례 사용한 정황도 있다고 회사 측은 주장했다.
파스텔뮤직은 “회사엔 차씨가 전속계약 기간 중 작곡한 음원들에 대한 제작자로서의 권리가 있다”며 소송을 냈다. 계약기간 중 발매된 음반 5장의 제작비 1억 여원을 배상하라는 요구였다. 통상 음악의 저작권은 작곡가한테 있지만, 소속사 또한 음반 기획 및 제작의 공로에 따른 마스터권을 갖는다.
1·2심은 모두 차씨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음반 제작자의 권리엔 MR파일에 대한 권리도 포함된다”면서도 “벅스에 마스터권 일체를 양도한 이상, 파스텔뮤직으로선 차씨가 파일을 복제하거나 재생했다 해도 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고 밝혔다. 벅스에 모든 권리를 넘겼으니, 차씨에게 위자료를 요구할 권한도 사라졌다는 뜻이다.
2심 결론도 동일했다. 그러나 판단 근거는 상이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벅스 측에 사실조회를 요청해 “우리에게 양도된 건 완성된 음원이지 MR파일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 MR파일에 대한 권리는 여전히 파스텔뮤직에 있다고 확인해 준 셈이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파스텔뮤직이 MR파일 원본을 보유하고 있어 추후 이를 이용하는 데 문제가 없고 △차씨가 공연 당시엔 연주자를 별도 고용해 연주를 시켰던 점에 비춰 MR파일이 활용됐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점 등을 들어 “회사가 입은 손해는 없다”고 원고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3일 “차씨가 음반과 음원 저작자로서 저작권을 갖는 것과 별개로, 소속사는 음반과 MR파일 제작을 기획하고 책임진 음반제작자로서 복제권 등의 저작인접권을 갖는다”며 원심 판결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회사 허락 없이 차씨가 그의 음반을 복제한 이상, 회사의 복제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날 대법원 판결은 ‘소속사의 MR복제권이 인정되고, 차씨의 파일 복사 행위는 그 자체로 타인의 권한에 대한 침해’라는 취지일 뿐, 차씨가 회사에 물어야 할 구체적 배상액을 정한 건 아니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회사는 음반제작에 투입됐다는 1억여 원을 배상액으로 요구하는데, 향후 파기환송심에선 이 손해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