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외교를 할 준비가 돼 있다. 문제는 ‘북한은 과연 그럴까’이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23일(현지시간)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에 또다시 대화를 촉구하며 한 발언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외교와 대화가 필수적이라고 확인한 21일 한미정상회담에 이어 미국이 다시 한번 북한과의 외교를 강조한 것이다. 다만 북한이 당장 협상장에 나올 기색이 없는 만큼 미국은 협상 재개 장기전도 준비하는 모양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미 ABC방송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신중하고 조정된 접근을 통한 북한과의 외교적 관여를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최선의 기회로 판단했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한반도 비핵화를) 일거에 해결할 일괄 타결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명확하게 조정된 외교, 북한 측으로부터의 명확한 조치가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우리는 그런 방법을 제시했다. 북한 측이 실제로 (외교와 대화에) 관여하기를 원하는지 보려고 기다리고 있다. 공은 북한 코트에 넘어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한미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2018년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공동성명’ 등 기존 남북ㆍ북미 합의를 기초로 북한과 대화에 나서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미국은 이달 초 북한에 새 대북정책 설명을 위한 접촉도 제의한 상태다. 블링컨 장관의 이날 발언은 미국이 여러 기회에 북미대화 의지를 밝힌 만큼 이제는 북한이 호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블링컨 장관은 또 “북한이 유엔에 의해 분명히 금지된 행동에 계속 관여해 제재가 유지되고 있지만 우리는 분명 이를 외교적으로 추구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밝혔다. 대북제재 관련 논의도 북미대화가 재개되면 북한과 얘기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물론 미국이 마냥 서두르는 것은 아니다.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 자리에서 성 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대행의 대북특별대표 지명 깜짝 발표가 이뤄졌지만 급할 건 없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인도네시아 주재 미국대사인 김 신임 대북대표가 당분간 현직을 겸직하기로 한 것도 북한의 대화 호응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굳이 급하게 움직이지는 않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도 21일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문을 닫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현재로서는 정상회담 계획이 없다”며 실무 단계부터 북미가 합의를 쌓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을 움직이게 할 실질적 카드가 공개되지는 않았다. 때문에 한미 공동성명만으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다만 북핵 6자회담 미국 차석대표를 지낸 조셉 디트라니 전 대사는 “이번 정상회담의 유연한 대처 메시지는 비핵화 진전에 따라 북한에 무언가를 제공한다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을 담은 2005년 9ㆍ19 6자회담 공동성명과 매우 유사하다”며 “북한을 협상에 복귀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