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을 도입한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법)의 시행 전에 실거주 목적의 집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면, 매도인이나 매수자가 기존 임차인의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19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0단독 문경훈 판사는 아파트 매수자인 A씨 부부가 기존 임차인 B씨 가족을 상대로 낸 건물인도 소송에서 최근 “피고는 임대차 계약 종료일에 보증금을 돌려받고 아파트를 원고에 넘겨라”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19년 4월 15일 B씨는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를 2년간 임차하는 계약을 당시 집 주인 C씨와 맺었다. 해당 아파트에는 B씨 부모가 거주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5일, A씨는 B씨 계약기간이 끝난 뒤 직접 거주할 목적으로 C씨와 아파트 매수 계약을 맺었고 계약금도 지불했다. 소유권 이전등기는 같은 해 10월 30일 마무리됐다.
문제는 소유권이 A씨 측에 넘어가기 2주 전인 작년 10월 16일, B씨가 당시 집 주인이었던 C씨에게 계약갱신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같은 해 7월 31일 시행된 개정 임대차법에 새로 도입된 ‘임대인은 임차인이 정해진 기간 내에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한다’는 조항 탓에 양측 분쟁이 빚어진 것이다. C씨는 A씨 부부와의 계약 체결을 이유로 B씨 요구를 거절했으나, B씨 측은 계약갱신요구권 조항을 내세우며 버텼다. 그리고 A씨 부부는 “임대차 기간 종료(올해 4월 14일) 후 아파트를 인도해 달라”고 요구하며 B씨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법원은 A씨 부부의 손을 들어줬다. 문 판사는 “원고들은 개정 임대차법 시행 전에 실거주 목적으로 계약을 했고, 기존 임대차 계약 종료 후 당연히 거주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계약 당시엔 도입을 알 수 없었던 계약갱신요구권의 실행 전에,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치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B씨의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고 하면 형평에 반한다”며 “정당한 사유에 따른 계약갱신 요구 거절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현행 임대차법은 ‘계약갱신 요구 거절 사유’를 제6조3의 1항 8호(임대인이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 및 9호(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 등으로 정하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개정 임대차법 시행 전, 매매계약을 맺고 계약금까지 지급했을 땐 임대차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할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취지”라며 “국토교통부의 동일한 유권 해석이 있었지만, 판결로 나온 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