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기대 이하였던 걸까. 연일 하락세를 걷던 쿠팡 주가가 상장 후 첫 분기 실적을 발표한 직후 턱걸이로 유지했던 공모가마저 내줬다. 매출이 성장 중이긴 하지만 매출 상승폭을 크게 뛰어넘는 적자 규모에 발목을 잡힌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수익성 대신 이용자 모집에 방점을 찍은 사업모델의 한계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쿠팡 주가는 전날보다 9.3% 떨어진 32.04달러에 마감됐다. 전날까지만 해도 35.33달러로 공모가(35달러) 하회는 가까스로 막았지만 분기 실적 발표 후에 폭락했다. 이날까지 8거래일 연속 하락이다.
지난 3월 11일 상장한 쿠팡의 시가총액은 첫날 한때 장중 69달러까지 오르면서 100조 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주가가 반토막 넘게 날아가면서 시총은 62조6,000억 원 수준으로 두 달여 만에 40조 원 가까이 증발한 셈이다.
이런 주가 흐름은 상장 이후 처음 공개된 쿠팡의 분기 실적에서 형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전날 쿠팡은 전년 동기 대비 74% 증가한 42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고 발표했지만 문제는 적자 규모였다. 영업적자가 2억9,503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80% 급증했다.
상장과 관련한 주식 보상 비용 등 일회성 지출을 감안하더라도 늘어난 주문을 감당하려면 투자와 판매관리비용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실적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1분기 판매관리비만 전년 동기 대비 2배에 가까운 9억9,982만 달러를 썼다. 이로 인해 총 영업비용은 44억7,418만 달러로 80% 증가했다.
쿠팡은 모든 이용자에게 배송료를 받지 않는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등 공격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 네이버가 쇼핑 저력을 키우고 있고 매각 작업 중인 이베이코리아 인수자가 등장하면 강력한 경쟁자는 또 출몰하게 된다. 출혈경쟁을 버텨내려면 쿠팡은 계속 적자가 날 것이란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 쿠팡은 계속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분기에도 유형자산 등 취득에 1억4,683만 달러를 지출했다. 지난해 1분기보다 2배 늘어난 규모다. 물류센터 건립 및 운영, 인건비, 기술 인프라 확대 등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면서 조정 에비타(EBITDA,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손실은 1억3,297만 달러로 1년 새 3배 확대됐다.
이에 대해 쿠팡은 여전히 '계획된 적자'란 입장이다. 로켓배송을 전국에 촘촘히 구축하기 위한 투자라는 것이다. 김범석 쿠팡 의장은 전날 실적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 "쿠팡은 성장주기의 초기 단계"라며 "내년에는 그동안 구축했던 인프라의 50% 이상을 추가로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선 눈에 보이는 수익성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같은 날 1분기 실적을 발표한 신세계그룹 통합몰 SSG닷컴의 영업적자는 31억 원이었다. 전년 동기보다 166억 원 줄었다. 이진협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경쟁사인 쿠팡의 매출 성장률과 비교하면 SSG닷컴 성장성이 미진해 보일 수 있지만 수익성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다르다"며 "적자를 크게 축소했고 무리한 비용 투입을 지양하면서 안정적으로 성장세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자상거래(e커머스) 경쟁사들은 비용을 잡지 못하는 구조가 장기전에 취약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e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쿠팡이 흑자를 볼 날은 모든 경쟁자가 죽은 뒤인데 롯데, 신세계 등은 전국 목 좋은 곳곳에 가지고 있는 부동산만 가지고도 충분히 버틸 것"이라며 "쿠팡은 언제까지 적자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뉴욕증시에 우회상장돼 있는 국내 정보기술(IT) 업체 관계자는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는 부실기업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며 "가시적인 실적이 나와야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