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수사? 진심?'... 송영길의 'LTV 90% 허용' 가능할까

입력
2021.05.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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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V 90%, 대출 상환 부담 크고 집값 올릴 수 있어
여당 내에서도 '정치적 구호'에 그친다고 평가
당정은 다른 송 대표 정책인 '누구나집'과 혼동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동산 규제 완화책 중 하나로 무주택자 등에게 집값의 90%까지 빌려주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90% 허용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과 금융권은 LTV 90%가 실제로 시행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당정 내부에서도 집값 상승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데다가, 오는 7월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가 시행되면, LTV 90%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가 되기 때문이다.

LTV 90% 도입해도 DSR 40%에 막혀

13일 정치권에 따르면 송 대표는 전날 열린 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 첫 회의에서 "LTV 90%는 실제로 가능하고 꼭 가능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송 대표가 지난달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부터 가장 앞세운 LTV 90%는 서민·실수요자에 대한 LTV 우대 정책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방안으로 해석됐다.

서민·실수요자는 부동산 규제 지역에서 주택을 사면 이 지역 내 LTV 기준인 40~50%가 아닌 50~60%를 적용받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서민·실수요자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늘려주기 위해 우대 수준을 현행 10%포인트에서 추가로 10%포인트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대 수준만 50%포인트인 LTV 90%와는 격차가 크다.

금융권에서는 LTV 90% 허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오는 7월부터 차주별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를 시행하게 되면 주담대를 LTV 90%까지 빌릴 수 있는 실수요자는 현실적으로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중산층인 연봉 5,000만 원 직장인이 서울에서 9억 원짜리 아파트를 산다면 DSR 40% 적용 시 만기 30년 주담대 한도는 4억2,200만 원이다. 금리 2.5%, 다른 대출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다. LTV 90%를 반영하면 주담대 한도는 8억1,000만 원까지 늘어나지만 의미 없는 숫자다. 은행권은 DSR와 LTV 중 더 낮은 금액으로 대출해주기 때문이다.

다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LTV 90%로 돈을 빌렸다고 쳐도 매달 갚아야 할 대출액은 현재 소득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일 수밖에 없다. 자칫 집값이 대출 당시보다 떨어지면 집을 팔아도 대출액이 많은 만큼 이를 모두 갚기 힘들 가능성도 있다. 거꾸로 LTV 90%로 부동산 시장에 자금이 몰려 집값을 높일 여지 역시 배제할 수 없다.


"LTV 90%, 서브프라임 떠오르게 해"

금융권 관계자는 "LTV 90%는 주택 구입자에게 돈을 많이 빌려줬다가 터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떠오르게 한다"고 말했다.

이런 부작용은 여당 내에서도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민주당 의원들조차 LTV 90%를 정치적 구호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배경이다. 부동산특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 민주당 의원은 "LTV 90%는 건전성을 생각해야 하는 은행권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어 70~75%가 적정하다"고 말했다.

당정 내에선 LTV 90%가 송 대표의 다른 정책인 '누구나집 프로젝트'(누구나집)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누구나집은 금융 정책이라기보다 공급 정책에 가깝지만 집값의 10%만 부담한다는 구조 때문에 LTV 90%와 같은 맥락에서 보는 시각이다.

이 프로젝트는 송 대표가 인천시장 재직 당시 추진한 사업이다. 무주택자가 누구나집 협동조합에 참여해 집값의 10%만 내면 8년 동안 임대 후 최초 분양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송 대표 측은 LTV 90%와 누구나집은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송 대표 핵심 측근은 "실수요자 LTV 90%는 주택을 구매할 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고 누구나집은 뉴스테이 같은 개별 공급 프로젝트로 아예 성격이 다르다"라며 "LTV는 서울 강남 같은 곳까지 90%를 할 순 없을 텐데 지역별 차등화 여부 등을 정부와 상의해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담 기자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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