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민간이 함께 구축할 'K반도체 벨트' 청사진이 공개됐다. 핵심은 2030년까지 반도체 제조에서부터 소재·부품·장비(소부장)와 첨단장비, 팹리스(설계) 등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최첨단 반도체 공급망 설계다. 이를 위해 관련 기업에선 10년간 510조 원 이상의 투자에 나서고 정부에선 세액공제 확대와 금융지원 및 인프라 확보에 주력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진행 중인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확실한 주도권도 가져오겠다는 구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향후 10년간 진행할 국내 기업들의 510조 원대 투자 계획과 정부의 시설 투자와 세액공제 확대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K반도체’ 전략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의 현장 방문에선 최근 심화된 미·중 갈등 국면 속에서 빚어진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차량용 반도체 대란에 정부가 직접 능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도 읽힌다. 이날 행사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을 비롯한 주요 국무위원들도 참석했다.
‘산업의 쌀’로 알려진 반도체는 우리나라 수출의 20%를 담당하고 있다. 사실상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최근 미·중 간의 패권 경쟁과 공급난이 격화된 가운데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특단의 종합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컸다.
이번에 제시된 'K반도체 벨트' 또한 이런 분위기에서 잉태됐다. 이 벨트는 판교와 기흥~화성~평택~온양의 서쪽, 이천~청주의 동쪽이 용인에서 연결돼 ‘K자형’ 모양을 띤다.
이곳에 집적화 단지로 자리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비롯해 벨트 내 지역별로 제조, 소부장, 첨단장비, 패키징, 팹리스 관련 기업들이 들어서고 기존 업체들은 투자 확대에 나선다. 판교 부근엔 ‘한국형 팹리스 밸리’가 새롭게 조성될 예정이다.
국내 반도체기업들은 올해 단일산업 중 최대 규모인 41조8,000억 원 투자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10년간 누적으로 510조 원 이상을 투입할 방침이다.
K반도체 벨트의 규모는 총 1,388만4,300㎡(420만 평)에 입주기업은 208개사에 이른다. 2030년 이후 연간 매출 기대 효과는 122조 원이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될 전망이다. 반도체 강국인 대만의 신주(新竹) 과학단지의 경우 면적은 총 1,322만3,141㎡(약 400만 평), 입주기업은 170여개사로 알려졌다.
이날 행사에선 삼성전자의 평택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을 포함해 SK하이닉스의 용인 소부장 특화단지와 네패스의 첨단 패키징 플랫폼, 리벨리온의 판교 팹리스 밸리 등에 대한 투자 계획도 소개됐다. SK하이닉스는 지금보다 2배 수준의 8인치 파운드리 생산능력 확보도 검토 중이다.
국내에서 단기간 내 기술추격이 어려운 극자외선(EUV) 노광과 첨단 식각 및 소재 분야 등에선 외국인투자기업 유치도 확대한다.
첨단 EUV 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네덜란드 ASML은 화성에 2,400억 원 규모의 교육훈련센터를 짓기로 하고 이날 투자 협약식도 진행했다. 세계 3위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국의 램 리서치도 생산 능력을 2배로 증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부지를 물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이들 민간 투자를 전방위로 뒷받침하기로 했다.
특히 기업 대상 세액공제 중 ‘핵심전략기술’ 트랙을 신설해 반도체 연구개발(R&D)에 최대 40∼50%, 반도체 시설투자는 최대 10~20% 세액을 공제해주기로 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2024년까지 투자분에 적용된다. 현재 반도체 R&D 세액 공제는 대기업이 최대 30%, 중소기업은 최대 40%다. 시설투자 세액공제는 대기업의 경우 3%에 불과했다. 정부 관계자는 "우선 2024년 투자분까지 적용하고 추후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지원도 확대된다. 총 1조 원 이상의 ‘반도체 등 설비투자 특별자금’을 신설해 우대금리로 설비투자를 지원할 방침이다.
반도체 기반시설 지원책 또한 마련했다. 반도체 제조시설에 필수적인 용수 공급을 위해 용인·평택 등 반도체 단지의 10년 치 용수 물량을 확보하고, 반도체 관련 전력 인프라는 정부와 한전이 최대 50% 범위에서 공동 분담할 방침이다.
반도체 인력 양성의 경우엔 향후 10년간 3만6,000명을 육성할 예정이다. 반도체 관련학과 정원을 확대해 1,500명을 배출하고, 반도체 장비 기업과 연계해 5개교에 계약학과를 신설, 학사 인력 1만4,400명 등을 양성할 계획이다.
정부에선 이런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될 경우 연간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992억 달러에서 2030년 2,000억 달러로, 고용인원은 총 27만 명으로 각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반도체 공급난이 심화하고, 반도체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엄중한 시기에 이번 전략을 만들었다”면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는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 기지가 된다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주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