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시간이 흘러가는 방식은 이 세상의 시간이 흘러가는 방식과 일치할 때도 있겠지만 상이할 때도 있는 것 같다. 가령 우리가 1920년대 문학이나 1930년대 문학이란 말을 사용할 때 느끼는 시간의 흐름과 2010년대 문학이나 2020년대 문학이란 말을 사용할 때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전혀 다르다. 10년 단위라는 같은 시간적 길이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에 흐른 시간의 양이 2010년대에 비해 엄청나게 많아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의 일단을 필자는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거리에서 찾고 싶다. 한국문학이 숨가쁘게 세계문학을 따라잡아야 했던 시절과 그 격차가 거의 소멸된 지금 사이에는 문학의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가 다르게 느껴질 테니 말이다.
제32회 팔봉비평문학상의 1차 회의는 4월 20일에 열렸다. 이 회의에서 심사위원들의 작업은 이 상의 권위와 전통을 존중하면서 60여 권에 달하는 심사대상 평론집 중 주목해서 읽어야 할 평론집의 권 수를 압축하는 일에 주로 집중됐다. 그리하여 심사위원들은 정독해야 할 평론집을 5권까지 줄인 후 1차 회의를 산회했다.
4월 30일 열린 2차 회의에서 전반부의 선별 과정은 무척 속도감이 있었다. 5명에서 2명으로 수상 후보자를 줄이는 과정은 옆에서 보기에도 너무나 쉬워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 1명을 선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두 사람이 지닌 장단점을 찬찬히 비교하고, 그 장단점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따져보고, 그러고 난 다음에도 급한 일이 없는 것처럼 느릿느릿 비평가로서의 여정까지 돌이켜 따져보는 일을 몇 차례 거듭한 다음에야 심사위원들은 힘든 기지개를 켜듯 오형엽이란 이름의 기지개를 켜 보였다. 그러고는 홀가분해지기를 간절히 바란 것처럼 얼른 수상자의 이름을 옆에 밀쳐두고 한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심사위원들의 그 같은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그 순간 문학의 시간이 너무나 힘들고 더디게 흘렀다고 생각했다. 최종 후보자로 남은 두 사람의 평론은 이론에 집중하는 방식과, 그 이론을 서양에서 가져왔다는 사실, 현장비평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끊임없이 서양의 현재적인 비평에 보폭을 맞추려는 태도 등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이런 점에서 서양문학과 시간 차이가 크게 좁혀진 한국문학이 심사위원들을 괴롭힌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 상이 아무쪼록 우리 현대시의 심층을 구조화하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설명의 틀을 정립하려고 애써온 수상자의 노고에 작은 보상이나마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상이 한국문학 속에 자신의 자리를 당당하게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