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외교장관 회담 꺼렸던 日... "미국 의향 작용해 성사"

입력
2021.05.07 15:30
日 언론이 전하는 한일 양자회담 뒷이야기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 회담을 계기로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은 애초 일본 측이 꺼렸으나 한일 관계 개선을 바라는 미국의 의향이 작용해 성사됐다고 일본 언론이 7일 보도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5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및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장관과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을 가진 직후 약 20분간 모테기 장관과 양자 회담을 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측은 당초 회담에 소극적이었다. 한국이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그동안 일본 정부가 요구한 ‘해결책’을 제시할 가능성이 낮았고, “회담해 봤자 관계가 안 좋다는 것만 눈에 띌 것”(외무성 관계자)이라는 이유였다.

이와 관련, 아사히신문은 회담이 성사된 데는 “미국의 의향이 컸다”면서, 일본 정부 관계자가 “한일 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블링컨 장관의 체면을 세워줬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마이니치신문도 “미국 측의 의향을 따르는 형태로 어떻게든 회담이 실현됐다”고 전했다. 외무성 고위관계자는 요미우리에 미국의 직접적인 중개를 부정하면서도 “일본과 미국, 미·일·한 회담을 했는데 일본과 한국만 안 하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하다. 미국의 체면을 세워준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회담은 미국이 주도한 한·미·일 회담 직후에, 그것도 런던의 미국 대표단 숙소에서 열렸다.

한일 양자 회담은 예상대로 위안부ㆍ강제징용 문제는 물론 오염수 배출 문제까지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린 채 끝났다. 의견이 일치한 것은 “앞으로 외교당국 간 의사소통을 지속적으로 하겠다”는 것뿐이었다. 회담 후 두 장관이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만 봐도 악수도 하지 않는 냉담한 표정이다. 외무성 관계자는 “바로 지금의 한일 관계를 나타내는 한 장의 사진”이라고 평했다.

모테기 장관은 정 장관이 지난 2월 취임한 후 이달 5일 양자 회담 전까지 전화통화조차 하지 않아 일부 일본 언론으로부터 “외교상 결례”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 법원이 위안부 및 강제징용 소송에서 일본 정부에 배상을 명한 판결과 관련, “한국 정부가 국제법상 불법 상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냉랭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 강제징용 문제는 1965년 한일 협정으로, 위안부 문제는 2015년 위안부 합의로 해결됐으며, 이에 반하는 판결은 모두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아사히신문은 “양자 회담으로 유화 분위기가 생겼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는 구체적인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외무성 간부의 말을 전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