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썩은내' 폐그물·부표 쌓여가는 연평도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

입력
2021.05.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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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해변 등에 폐어구·폐부표 산더미
해양생물 죽이고 선박 감김 사고도 빈번
"회수보다 불법어구 사용 제한이 시급"
'어구실명제' 수산업법 국회 통과 주장도

선착장 주변에선 썩은 생선에서 나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스티로폼 부표와 뒤섞여 2m 가까이 쌓인 폐그물에서 나는 냄새였다. 지난 3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 당섬 선착장에서 만난 한 선원은 일회용 그물들을 가리키며 “바다에 버릴 수 없으니 섬으로 갖고 온 것”이라고 말했다. 새벽 조업을 나갔다가 귀항한 그는 제철을 맞은 꽃게와 꽃게잡이 그물을 하역하고 있었다. 상품가치가 없는 잡어와 폐어구, 비닐 쓰레기가 걸린 그물은 선착장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포클레인을 동원해야 할 만큼 거대한 양이었지만 한 번 쓴 그물은 그대로 버려졌다.

다른 주민은 아예 1톤 트럭을 몰고 와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물을 선착장 한쪽에 버리고 갔다. 이미 그곳엔 썩은 내가 진동하는 폐그물과 폐어구, 플라스틱 바구니가 가득했다. 연평도 선착장은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일회용품 쓰지 않기 운동의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다.

해양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해 폐어구와 폐부표를 가져오면 보증금을 지급하는 ‘어구·부표 보증금 제도’ 시행이 1년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현실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2018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인천‧경기 해안이 전 세계에서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하기 쉬운 폐어구‧폐부표는 선착장과 해변은 물론, 인근 도로까지 점령하고 있었다.

이날 오후 연평도 서쪽 구리동 해변에서도 파도에 떠밀려온 그물과 밧줄, 스티로폼 부표, 폐목재 등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해변 곳곳에 부서진 채 나뒹굴고 있는 부표 중에는 드럼통만한 것도 보였다. 주민들과 삼삼오오 쓰레기를 주워 담던 방모(63)씨는 “3월부터 매주 세 차례씩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지만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며 “잠깐이면 마대 하나가 가득 찬다”고 말했다. 폐어구와 폐부표는 국내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량(연간 6만7,000톤 추정)의 54%를 차지하는 골칫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일회용 빨대 사용하지 않기 등 친환경 운동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물에 뜨는 폐부표와 달리 바다를 떠도는 폐어구는 해양생물을 죽이고 사람에게도 피해를 입힌다. 폐플라스틱과 나일론 폐그물에 의해 물고기 등이 죽는 ‘유령어업’의 국내 피해량은 연간 9만5,000톤(이용 자원의 10%)에 달한다. 바다에 유실된 낚시ㆍ양식 쓰레기와 무자비한 어업은 어획량 감소와 바다생태계 파괴를 불러오고 결국엔 수산자원 급감으로 이어진다.

폐그물과 밧줄이 선박 추진기(스크루)에 감겨 발생하는 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19년 국내 해양사고 2,971건의 11.6%(346건)가 부유물 감김 사고였다. 연평도의 한 어민은 “조업 나갈 때마다 스크루에 폐그물이나 밧줄이 걸릴 정도”라며 “그 자리에서 제거하지 못하면 곧장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경북 울릉군 독도 인근에서 발생한 레저용 요트 좌초 사고 역시 스크루에 걸린 폐그물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국내에선 아직도 일회용 그물 등 어구의 생산‧사용‧관리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내 연간 어구사용량(2016년 기준) 13만톤 중 23.5%가 폐어구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내년 하반기 도입을 앞둔 어구·부표 보증금제, 해양수산부에서 추진하는 생분해 그물과 친환경 부표 역시 어민들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박태원 전 연평도 어촌계장은 “폐어구‧부표 회수보다 시급한 건 불법어구 사용을 제한하는 일”이라며 “그물을 5통 쓰겠다고 신고한 뒤 60통을 사용하거나, 되가져오는 게 귀찮아 버리는 게 비일비재한데 정부에서 이런 부분엔 관심조차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생분해 그물도 완전 분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게 어민들 입장이다.

결국 해양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선 단속 강화나 법 제정 등 강제성 있는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많다. 박주희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어구 사용에 대한 특별한 제한이 없다 보니 한 번 쓰고 버리는 일이 많다”며 “어구 소유자를 표시하는 어구실명제 도입이 골자인 수산업법 전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같은 취지의 어구관리법이 발의됐으나 어민들 반대에 부닥쳐 폐기됐지만, 더는 늦출 수 없다는 게 환경단체들 주장이다.

연평도= 이환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