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1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의 어깨에 적지 않은 짐이 놓였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 완료 소식 직후 북한이 연속 담화를 통해 불만을 쏟아내면서다. 청와대와 외교가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우리 측 요구가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점에 고무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장에 호락호락하게 들어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은 부담이다. 이번 회담이 임기 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가동을 견인할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점에서도 청와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에선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낸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에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외교당국 관계자는 3일 "미국도 실용적 접근과 동시적·단계적 비핵화에 공감했고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놨다"며 "우리 정부 입장이 많이 반영된 모양새"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서도 "북미 간 기존 합의인 싱가포르 합의의 토대 위에서 대북정책이 수립될 것"이라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유산인 싱가포르 합의를 존중할지 여부는 당초 한미 간 이견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 부분이었다. 바이든 정부가 전임 정부 유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점에서 청와대에서도 환영할 만한 수준이라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는 큰 틀의 원칙과 방향만 제시했을 뿐, 북한에 대한 어떠한 유인책을 갖고 있는지 등 각론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의 '입구 찾기'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추가로 조율해야 하는 과제인 셈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이나 금강산·개성 등 남북 경협사업에 대한 제재 유연화 등을 제안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면서도 "북한의 상응 조치가 담보되지 않는 한 미국은 이를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전날 담화를 통해 반발한 ‘단호한 억지(stern deterrence)’나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인식을 두고도 한미 간 간극이 노출될 여지가 있다.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어떤 유인책을 끌어내든 간에 북한의 호응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은 가장 큰 고민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요구대로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이나 대북제재 해제 등 선(先)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에 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이 기대하는 구체적인 협상 재개 조건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김여정 노동당 제1 부부장은 전날 대북전단 비난 담화를 발표하면서 남북 간 물밑접촉에 대한 기대마저 차단했다. 한미 정상회담 등에서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라는 압박이면서도 경제 내구력이 허락하는 한 북한이 '버티기'에 돌입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분간 한미 양측에 대한 도발 수위를 높여가며 협상력 제고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한미회담에서 의제로 오를 현안에 대한 양측 간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미국의 적극적인 자세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반면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확인했듯이 미국의 제일 관심사는 대(對)중국 견제다. 우리 측의 중재 노력에도 북미 양측을 모두 만족시키거나 설득하지 못할 경우 여전히 샌드위치 신세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