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서도 무색·무취 '고주파 공격'?… 원인 모를 두통 겪는 美 정부 직원들

입력
2021.04.3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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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최소 2건 고주파 공격 가능성 조사
과거 쿠바 등 美 대사관 직원 사례와 유사

과거 쿠바와 중국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겪은 두통 등 신경계 이상 원인으로 지목된 ‘고주파 공격’이 미 본토에서도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 주변 등 최소 두 건의 의심 사례가 나왔는데, 당국은 러시아, 중국 등 적성 국가의 소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밀 조사에 착수했다.

미 CNN방송은 29일(현지시간)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국방부 등 정부기관이 일명 ‘아바나 증후군’과 유사 증상을 보인 사례 2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바나 증후군은 별다른 이유 없이 어지러움과 메스꺼움, 두통 등을 겪고, 심하면 청력 손실까지 초래하는 신경 발작 증상을 지칭한다. 2016년 쿠바 수도 아바나의 미 대사관 직원 24명이 무더기로 이런 질병을 앓은 데서 유래했다.

조사 대상인 한 사건은 지난해 11월 백악관 남쪽 일립스 공원 인근에서 일어났다. 국가안보회의(NSC) 당국자 한 명이 갑자기 관련 증상을 보인 것으로 보고됐다. 2019년엔 워싱턴 근처 버지니아주(州) 교외 지역에서 개와 산책을 하던 백악관 직원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남성잡지 GQ에 따르면 이 직원은 특정 차량과 차량에서 나온 남성을 지나친 직후 아바나 증후군을 겪었다. 그는 “산책하던 개가 먼저 발작을 일으켰고 이후 음이 높은 소리에 귀가 울리고 머리가 극심하게 아팠으며 얼굴 옆쪽이 저렸다”고 진술했다.

미 행정부가 아바나 증후군 본토 사례를 조사하는 건 처음이다. 쿠바 사건 이후 2018년 주중 대사관 직원과 가족 일부도 같은 증상에 시달리자 원인을 파악한 적이 있다. 또 다른 나라를 찾은 미 중앙정보국(CIA) 당국자 중에서도 경험자가 나왔다.

미 당국은 극초단파를 포함한 고주파 에너지가 신경계를 공격해 이상 증상을 유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무색ㆍ무취하다는 점에서 증거를 밝혀내기 어려운 신종 범죄 수법으로 꼽힌다. 지난달 미 국립과학공학의학원(NASEM) 보고서에서도 고주파 에너지가 ‘유도된’ 것이라고 명시해 계획된 공격임을 시사했다. 다만 범행 주체를 적시하지는 않았다. 물증도 없이 섣불리 다른 나라를 배후로 지목했다간 외교 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도 마찬가지다. 백악관은 “건강과 관련한 직원들의 사고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도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구체적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CNN은 “국방부가 공격 배후에 러시아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충분한 정보는 없다는 취지로 의회에 알렸다”며 “중국도 의심받고 있다”고 전했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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