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공세 버거운 中, 물러나는 메르켈 붙잡고 ‘대못 박기’

입력
2021.04.2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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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독일 '정부간 협상' 역대 최다 25명 각료 참석
9월 퇴임 앞둔 메르켈 총리 향해 中 '띄우기' 주력
"EU와 포괄적투자협정은 메르켈의 정치적 유산"


중국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각별하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무차별로 ‘중국 때리기’에 앞장설 때마다 속도 조절을 주문해온 ‘우군’이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서구 정상으로는 이례적으로 2018~2019년 2년 연속 중국을 찾았다. 특히 2019년 9월 당시 건강 이상설에도 불구하고 베이징과 우한을 잇따라 방문하는 강행군을 펼치며 중국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9월 총선 이후 물러날 예정이다. 5월 주요7개국(G7) 외교장관회의, 6월 G7 정상회의 등 민주주의 국가들의 공세가 예고된 상황에서 중국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이에 독일과 협력의 강도를 높이며 ‘대못 박기’에 나섰다. 28일 화상으로 열린 ‘정부간 협상’에 참석한 양국 각료는 25명에 달한다. 2011년 회의 시작 이후 최대 규모다.

이 자리에서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단결과 협력,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12월 체결한 EU와 중국 간 포괄적투자협정(CAI)을 거론하며 “더 많은 투자기회를 보장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메르켈 총리가 인권 문제를 언급하긴 했지만 차이보다는 협의에 방점을 찍는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 2016년부터 5년 연속 독일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경제력을 의식한 행보다. 독일을 고리로 서구의 봉쇄에서 벗어날 활로를 찾으려는 중국의 셈법이 적중한 셈이다.

중국 매체와 전문가들도 ‘메르켈 띄우기’에 가세했다. 실용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독일 정권 교체 이후에도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지침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글로벌타임스는 29일 “메르켈 총리 후임도 이념이나 인권 문제에 발목을 잡히기보다는 중국과의 소통과 실질적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왕이웨이(王義桅) 중국 런민대 유럽문제연구소장은 “CAI 체결은 9월 퇴임하는 메르켈 총리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유산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가 중국과 EU 간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의미다.

중국은 서구의 압박에 맞서기 위해 센카쿠열도 영유권 분쟁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일본도 끌어들였다. 일본이 전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의회 비준절차를 마무리하자 “미국과의 지정학적 동맹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경제 파트너십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반영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RCEP는 한국, 중국,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등 15개국이 지난해 11월 체결한 것으로 회원국 인구는 22억7,000만 명,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 총액의 30%인 26조 달러에 달한다. 기존 자유무역협정(FTA) 중 최대규모다. 일본에 앞서 중국, 싱가포르, 태국이 비준절차를 마쳤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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