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냐 안전이냐… 테러 시달리는 佛 '온라인 감시' 대폭 강화

입력
2021.04.29 19:55
13면
정부, 온라인 감시 권한 높이도록 법 개정
테러 양상 변화로 기존 방법 무용지물 탓
개인 자유 억압·대선 앞둔 정치 전략 비판

2015년 이후 잊을만하면 터지는 크고 작은 테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프랑스가 ‘온라인 감시’를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테러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져 기존 감시망에 포착되지 않은 사례가 늘자 온라인부터 샅샅이 훑어 범행을 미리 막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옥죌 수밖에 없어 반발도 커지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이날 정보당국이 시민들의 온라인 활동을 감시할 수 있도록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의 ‘테러방지법’ 개정안을 공개했다. 2017년 해당 법을 제정한지 4년만에 손 본 것이다.

개정안은 정부가 온라인상에서 극단주의 콘텐츠에 접근하는 이들의 검색 기록을 알고리즘을 통해 보다 체계적으로 감시하고,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게 했다. 지금까지는 메신저만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인터넷 웹페이지 주소(URL)로 대상이 확대된다. 예컨대 누군가 인터넷으로 참수 영상을 반복적으로 본다면 정보당국에 익명으로 보고되는 형태다. 로랑 누네즈 국가정보 및 대테러 조정관은 “알고리즘을 분석할 경우 프랑스와 시리아 북서부에 있는 사람의 접촉 사실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온라인 감시 권한을 대폭 강화한 건 테러 양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테러범들이 전화나 메신저 등을 이용해 범행 모의를 했으나, 최근엔 대부분 온라인에서 정보를 얻고 소통한다는 것이다. 또 테러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이슬람 극단주의에 심취한 개인이 배후 없이 범행을 자행하면서 정보당국이 사전에 적발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실제 지난해 10월 수업시간에 표현의 자유를 가르치며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 풍자 캐리커처를 보여준 교사가 일면식도 없는 이슬람 극단주의 청년에게 참수당했다. 2주 뒤 니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도 극단주의를 추종하던 2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3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달 23일에는 파리 근교의 한 경찰서에서 지하드(이슬람 성전) 찬양 영상을 봤던 30대 남성이 흉기로 직원을 살해했다.

때문에 온라인 감시망을 보다 촘촘히 짜야 범죄 발생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는 게 프랑스 정부의 주장이다. 제랄드 다르마냉 프랑스 내무장관은 “전통적 정보 기법으로 확인할 수 없는 공격이 9건 연속 발생했다. 우리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전화선만 감시하며 장님이 되고 있다”면서 개정안을 옹호했다.

그러나 감시 강화는 자유 위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정부가 테러 방지를 핑계로 불필요한 부분까지 시민들의 삶을 들여다 볼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프랑스 디지털권리단체 ‘라 쿼드라튀르 뒤넷’ 소속 바스티앙 르 케렉 변호사는 “(정부의) 목적은 가능한 많은 데이터를 모아 대규모 감시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일각에선 프랑스 대선이 1년 남은 시점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우파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내린 ‘정치적 전략’이라는 힐난도 나온다.

일단 개정안 통과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전망이다. 4년 전 테러방지법 제정 당시에도 유엔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공권력 남용과 인권 침해 등 부작용을 지적했지만, 잇단 테러를 겪으며 불안감이 커진 프랑스 시민들은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허경주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