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실질적 지배자 김범석, 미국인이란 이유로 총수 지정 피했다

입력
2021.04.29 12:00
공정위, 29일 대기업집단·총수 지정
외국인 지정 안 하는 전례대로 동일인 '쿠팡 법인'

미국 뉴욕증시 상장에 성공한 쿠팡이 각종 기업규제의 집중 대상이 되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쿠팡의 실질적 소유주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은 미국 국적자라는 이유로 총수(동일인) 지정을 피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9일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인 71개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을 다음 달 1일자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대기업집단은 지난해보다 7개 늘었는데, 쿠팡도 올해 대기업집단에 새롭게 지정됐다. 쿠팡은 매출액이 늘어난 것은 물론 물류센터 등 유형자산이 증가해 자산이 5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공정위는 쿠팡의 동일인(총수)으로 김 의장 대신 쿠팡 법인을 지정했다. 김 의장은 쿠팡 전체 지분의 10.2%, 차등의결권 적용 시 76.7% 의결권을 가진 실질적 소유자이지만 동일인 지정을 피한 것이다.

동일인은 대기업집단 지정 자료와 관련된 모든 책임을 지며, 동일인이 누구냐에 따라 특수관계인, 총수일가 사익편취 제재대상 회사도 바뀐다.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됐다면 배우자와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 특수관계인과의 거래도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했다.

공정위는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은 이유로 그가 '외국인'이란 점을 들었다.

공정위는 "김 의장이 국내 쿠팡 계열회사를 지배하고 있음이 명백하다"면서도 "현행 규제가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외국인 동일인을 규제하기에 미비한 부분이 있는 점,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하든 쿠팡을 하든 현재로서는 계열회사 범위에 변화가 없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동일인 제도가 '국내용'이기 때문에 미국 국적자인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공정위의 이 같은 결정에 '외국인 특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2017년 이해진 네이버 최고투자책임자(GIO)의 동일인 지정 사례를 들며 '내국인 역차별'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 GIO의 경우 네이버에 대한 지분율이 적었지만, 대주주 중 유일하게 이사회 내 사내이사로 재직한다는 이유로 동일인으로 지정된 바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최근 “외국인을 지정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현재 시점에서 김범석 개인이나 친족이 갖고 있는 국내 회사가 없어 누구를 총수로 지정하든 사익편취규제 대상이 변하지 않는다"며 "특혜 논란은 없다"고 말했다.

세종= 손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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