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차례 연기 후 이달에는 내놓겠다던 '가계부채 관리대책' 발표가 다음 달로 또 밀렸다. 원래 이번 대책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차주별 적용 등 가계대출을 제어하는 데 초점을 맞췄었지만, 재·보궐선거에 참패한 여당이 대출 규제를 완화하자고 주장하면서 방향을 못잡고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가계부책 관리대책이 다음 달 '가계대출 완화대책'으로 명패를 바꿔 발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2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지난달 발표 예정이었던 가계부채 대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터지면서 이달로 미뤄진 이후 다시 다음 달로 2차 연기됐다.
가계부채 대책은 8%를 웃도는 부채 증가 속도를 4%로 제어하는 게 큰 줄기다. 다만 금융위는 대출을 조이는 과정에서 청년, 무주택자 등 실수요자에 대한 규제는 일부 완화하겠다고 밝혀왔다.
가계부채 대책 발표의 1차 연기는 대책을 보완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대책 발표를 앞두고 LH 사태가 터지자, 이 사태 원인 중 하나인 무분별한 비주택담보대출을 막기 위해 가계부채 대책 발표를 미룬 것이다.
하지만 2차 연기는 선거에 패배한 여당이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정책 기조를 흔들자 정부가 원래 준비된 방향대로 대책을 발표하지 못한 경향이 강했다.
실제 재보선 참패 이후 민주당에선 DSR 40%를 차주별로 적용한다는 가계부채 제어 방안이 쏙 들어갔다. 대신 가계부채 대책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은 실수요자 대출 규제 완화 방안만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원래 정부도 이번 대책을 발표하면서 청년과 무주택자 등 일부 계층에 한해 대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에 패배한 여당이 대출 규제 완화책만을 강조하자 당초 대책 목표인 대출 규제 강화 기조는 설자리를 잃게 됐다.
더 큰 문제는 대출 규제 완화를 놓고 민주당 내에서도 통일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실수요자까지 대출을 엄격하게 조여 선거에서 졌다고 주장하지만, 반대편에서는 대출 규제를 풀면 보수정권과 다를 게 없다고 맞서고 있다.
당장 다음 달 2일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 당권주자들은 서로 입장이 갈린다. 송영길 의원은 "청년 등 생애 첫 주택구입자에 LTV를 90%까지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홍영표 의원은 "송 의원 안을 도입하면 부동산 가격은 폭등할 수밖에 없다"고 맞받아쳤다.
당에서 입장을 통일하지 못하다 보니 당·정 간 가계부채 대책 논의도 진척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 역시 뾰족한 수 없이 민주당 눈치만 보고 있다. 공매도 재개 시점을 놓고 정치권 눈치만 살피던 지난달 상황의 재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협상 주체가 없는 점도 가계부채 대책을 연기시킨 요인이다. 정부 안팎에선 최소 민주당 대표가 선출돼야 가계부채 대책이 구체화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당 대표가 나서야 대출 규제 완화 방안에 대한 민주당의 책임 있는 입장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다음 달 4일 열리는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무사통과 여부도 가계부채 대책 발표에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국토부는 금융위와 함께 가계부채 대책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부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가계부채 대책은 이제 실수요자 대출 부분만 확정지으면 되는데 당이 입장을 정리해야 매듭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