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개발 불가능한 저층주거지만 속도

입력
2021.04.2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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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라면 밤새 만들겠다"며 정책 방향을 바꾼 정부가 지난해부터 잇따라 내놓은 주택 공급 대책 중 그나마 속도를 내고 있고 점수도 줄 만한 건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중 저층주거지 개발이다. 주민들 반응이 긍정적인 데다 주변 시세도 잠잠해 부작용이 없는 편이다.

서울 도봉구 쌍문1동 덕성여대 후문 인근은 이런 저층주거지 사업 후보지 15곳 가운데 하나다. 주민 동의율이 이미 10%를 넘어 예정지구 요건도 갖췄다. 20일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그동안 노후가 심해도 고도제한에 묶여 어떤 개발도 할 수 없었다”며 “공공이 주도해 사업을 진행하면 높은 건물이 없는 우리 동네에도 드디어 아파트가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부는 이곳 3만9,233㎡에 모두 1,008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주민들은 용적률 300%의 15층 아파트 단지를 기대했다.

다만 사실 이곳은 농사를 짓는 텃밭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서울 외곽 중에서도 변두리다. 지하철 1호선이나 4호선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대규모로 주택을 공급하거나 도심 주택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쌍문1동은 그동안 소규모의 가로정비사업 등이 추진되다 무산된 적이 많다. 이번에 주택공급활성화지구 후보지로 지정된 곳의 토지주는 500명 안팎이다. 10% 동의라고 해도 50명 수준에 불과하다. 다만 동의율은 이미 30%를 넘은 것으로 전해졌다. 도봉구에서 20년 넘게 복덕방을 운영한 한 공인중개사는 “민간으론 도저히 개발할 수 없는 지역인데 공공이 나서겠다고 하고 부지 중 3분의 1을 소유하고 있는 덕성여대와도 직접 협의를 한다고 하니 주민들 반응이 높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간 개발이 어려운 곳만 공공개발이 환영받고 있는 셈이다.

국토부가 2·4 대책에서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과 함께 제시한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의 성공 여부는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국토부는 이미 100여 곳이 신청했다고 밝혔지만 아직 후보지로 선정된 곳은 없다. 지난해 5·6 대책으로 나온 '공공재개발'이나 8·4 대책에서 발표된 '공공재건축'과 달리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은 조합 설립 없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이 직접 시행에 나서는 방식이다. 민간 재건축 사업에 철퇴가 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가 적용되지 않는 만큼 매력적이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의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가 본격화할 경우 사업 자체가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가 다양한 주택 공급 대책을 내 놨지만 하나같이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집값 상승에 대한 우려는 다시 높아지고 있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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