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석유공사가 창사 이래 처음 완전자본잠식에 빠지는 등 과도한 공기업 부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의 비금융공기업 부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
고령화가 더 심화되면 복지나 사회서비스를 공급하는 공기업의 지출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공기업의 재정건전성 문제는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한 난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 같은 공기업 부채의 원인으로 정부의 ‘암묵적 지급보증’을 지목하면서, 이를 아예 국가 보증채무로 분류해 관리할 것을 제안했다.
황순주 KDI 연구위원은 20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공기업 부채와 공사채 문제의 개선방안’ 보고서를 냈다. 지난해 IMF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비금융공기업 부채는 GDP의 23.5%로, 노르웨이(49.1%)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OECD 회원국 평균(12.8%)과 비교해도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한국의 공기업 부채 규모는 정부부채의 48.8%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2위(멕시코ㆍ22.8%)의 두 배가 넘는 압도적 1위다. 연간 국채 발행 대비 공사채(공기업이 발행하는 채권) 비중도 34.2%로 가장 높다. 황 연구위원은 “공기업 부채 규모가 크다는 것은, 정부가 각종 공공사업을 추진할 때 비금융공기업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자금조달 구조가 가능한 것은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암묵적 지급보증 때문이다. 실제 자본잠식 상태인 한국석유공사나 부실 자회사가 많은 산업은행 등도 높은 신용등급을 받고 낮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한다. ‘공기업이 파산해도 정부가 채권 원리금을 지급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가능한 구조다.
하지만 이 같은 암묵적 지급보증은 공기업과 정부의 ‘이중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다. 공기업의 재무구조 개선 의지를 낮추고, 정부도 직접 부채를 일으키는 대신 공기업에 공공사업을 떠넘기는 ‘쉬운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 연구위원은 “정부 부채는 국회나 재정당국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이 때 고려할 수 있는 손쉬운 대안이 공기업 부채를 일으키는 것”이라며 “정부는 재무적으로 무리한 정책사업도 공기업에 요구할 수 있고, 해외 자원 개발사업도 막대한 공사채를 발행해 추진됐다”고 말했다.
황 연구위원이 제시한 대안은 공사채를 국회 동의가 필요한 국가보증채무에 포함하거나, 공기업에 대한 자본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무리한 정책사업이 할당되더라도 국회의 심사 과정에서 제동이 걸릴 것”이라며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자본비율 유지를 위해 정부는 자본을 확충하고 공기업은 사업을 합리화 할 유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는 KDI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이례적으로 백브리핑을 열고 반박했다. 공기업 사업이라 할지라도 재무적 영향이 큰 신규투자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해 사전 검증을 하고, 주요 공기업의 중장기 재무 관리계획을 통해 적정한 연간 총부채, 투자 계획 등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해영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장은 “공기업 부채를 국가가 보증채무로 끌어안으면 오히려 공공기관이 국가에 대한 의존성을 더 높여 무분별하게 채권을 발행하는 등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며 “매년 경영평가로 (공기업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는지를 평가하고, 중장기 계획을 통해서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