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 지역 여성단체들이 옛 포항역사 부지에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건설된다는 소식에 반색하고 있다. 해당 건물이 들어설 땅이 포항 시내 최대 성매매 집결지와 맞붙은 곳이라, 지역 여성계는 이번 개발 사업이 집창촌을 척결할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 아래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18일 포항여성회에 따르면 여성회는 지난 15일 황병기 포항시 도시환경국장을 만나 포항역 일대 도시개발사업의 성공을 위해 여성단체와 포항시, 경찰 등으로 정비추진단을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정비추진단의 역할은 △불법 성매매 단속 △성매매 여성 지원계획 수립 △도심 부적격 시설 정비 등이다.
이런 움직임은 옛 포항역 인근 성매매 집결지를 겨냥한 것이다. 최근 포항시가 69층 높이의 주상복합 아파트 3개 동이 들어선다고 발표한 포항역사 도시개발사업부지 2지구(면적 2만7,700㎡) 바로 옆에는 성매매 업소 50여 곳이 영업 중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은 100명을 넘는다.
옛 포항역 집창촌은 포항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데다 밤에도 대학처럼 불을 밝히고 있다고 해서 '포항의 중앙대학'이라는 별칭까지 있다.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이곳의 성매매 업소는 철도 이용객이 한창 늘던 1980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2004년 성매매 방지 특별법 시행 직전에는 110개 업소에 종사자 수가 300명을 넘었다. 2015년 4월 포항역사가 KTX포항 노선 개통으로 북구 흥해읍으로 이전하고 포항시가 옛 역사 자리에 폭 20m짜리 왕복 4차선 도로를 개설했지만 집창촌의 불은 좀처럼 꺼지지 않고 있다.
포항여성회는 110년 만에 사라진 대구 지역 최대 성매매 집결지 '자갈마당'의 사례처럼 여성단체와 행정기관이 힘을 모아 개발 사업과 집창촌 폐쇄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대구 자갈마당 역시 2016년 민간사업자가 주상복합 아파트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지역 여성단체와 경찰, 대구시가 정비추진단을 구성해 강력한 성매매 단속과 종사자 자립 지원을 병행해 폐업을 이끌어냈다.
포항 여성계는 옛 포항역 집창촌이 폐쇄되지 않으면 주상복합 건설 사업이 난항을 겪는 것은 물론이고 성매매 업소가 더욱 활개치는 빌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2017년 5월 국가철도공단(옛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옛 포항역 부지를 개발하려 민간제안 공모를 시행하자 성매매 업소가 50여 곳에서 60여 곳으로, 종사자 수는 150여 명에서 180여 명으로 일시 증가했다. 더욱이 이번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 소식이 전해지면서 지난 3개월간 성매매 종사자 수가 20명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은주 포항여성회 회장은 "포항시가 대규모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이때 집창촌을 없애지 않으면 영원히 해결할 수 없게 된다"며 "부동산 시장의 '알박기'처럼 업주와 건물주가 보상금을 노리고 버티면 개발 사업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병기 국장은 "포항시도 여성단체가 주장하는 성매매 집결지 폐쇄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옛 포항역 지구 도시개발사업 성공과 집창촌 척결을 위해 여성회 제안을 검토한 뒤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