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성매매 이주여성 조사, 인신매매 피해부터 살폈어야"

입력
2021.04.12 12:00
경찰, 인신매매 정황에도 확인 절차 없이 조사 강행
단속 중 부상 불구 제3자 조력 없이 병실서 조사
인권위 "인권침해"… 조사관 서면경고·제도정비 요구

경찰이 성매매 이주여성을 조사하면서 인신매매 피해 여부부터 확인하지 않은 것은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국가인권위원회가 판단했다. 해당 여성은 경찰 단속 당시 오피스텔 건물에서 뛰어내려 큰 부상을 입었는데, 인권위는 경찰이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여성이 입원한 다인실 병실에서 조사를 강행한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태국인 이주여성 A씨에 대한 강압조사 등을 이유로 이주여성단체에서 제기한 진정에 대해 지난 2월 이런 내용으로 인권 침해 결정을 내렸다고 12일 밝혔다. 인권위에 따르면 태국인 이주여성 A씨는 2018년 8월 단기체류자격으로 국내에 입국했다가 직업알선소에 여권을 빼앗긴 채 성매매 일을 시작했다. 여러 업소를 전전하던 A씨는 지난해 2월 성매매 오피스텔에 경찰이 출동하자 4층 건물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하반신을 크게 다친 A씨는 사고 당일 응급실에서 피의자 신문을 받았다.

인권위는 경찰이 A씨의 입국 과정과 일을 시작하게 된 경위를 충분히 파악하지 않은 채 곧바로 조사에 돌입한 점을 지적했다. 인권위는 "성매매 행위를 적발할 때에는 노동 조건, 경제적 속박, 신체적·심리적 폭력 등의 사정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며 "한국 내 사회적 지지기반이 없는 A씨의 경우 인신매매 피해가 의심되는 상황이었음에도 관련 규정에 따른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A씨가 도움을 구할 만한 제3자의 동석 없이 사고 당일 다인실 병실에서 조사를 받았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인권위는 "다수가 있는 입원실에서 A씨의 신뢰관계인 없이 신문을 실시한 것은 피해자의 인격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경찰은 A씨가 신뢰관계인의 동석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인권위는 "이주여성으로서 A씨는 한국 사법제도에 접근성이 낮고 인신매매 피해 가능성이 높았다"며 "이런 사정을 고려해 충분히 보호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인권위는 당시 응급실에서 A씨를 조사한 경찰에 대한 서면경고 조치와 관련 제도 정비를 권고했다. 인권위는 "이주여성 등 사회적 지지기반이 취약한 계층을 수사할 때엔 신뢰관계인이나 유관기관에 상시적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라"고 촉구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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