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 합격자 늘면 부실 변호사 증가? 변협·로스쿨 공방

입력
2021.04.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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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3만명 시대 '적정 합격자' 공방>
변협 "합격자 1200명으로 감축해야"
작년 789명 미취업...실무교육 못 받아
로스쿨 "늘려야 양질 교육 제공" 반박

‘변호사 3만명 시대’가 도래한 가운데, 변호사시험(변시) 합격자 수의 적정 규모를 둘러싼 공방도 뜨거워지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올해 변시 합격 인원은 전년보다 500명 이상 줄인 1,200명 선으로 하향 조정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측이 “합격자 수를 크게 늘려 로스쿨의 ‘고시학원화’를 막아야 한다”고 정면 반박에 나선 것이다. ‘수습 변호사 과다 공급으로 적절한 실무교육이 힘들어진 데다, 경쟁 심화 탓에 법률서비스 질(質)만 하락한다’는 논리(변협)와, ‘당장 합격자 수를 줄이는 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담보하진 않는다’라는 반론(로스쿨)이 팽팽히 맞서는 모습이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변협은 23일 제10회 변시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최근 법무부에 “합격자 규모를 1,200명 선으로 감축하자”는 취지의 의견서를 두 차례 전달했다. 지난 2012년 1,451명이었던 변시 합격자는 매년 꾸준히 늘어 지난해엔 1,768명에 달했다. 합격자 규모는 법무부 산하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가 정하는데, 통상 로스쿨 입학 정원(2,000명)의 75%를 웃도는 수준에서 결정됐다.

변협의 이 같은 주장은 현재 법률시장이 ‘포화’ 상태라는 진단 때문이다. 변협은 △로스쿨 제도 도입 후 변호사 급증(2011년 1만2,607명→2020년 2만9,584명) △변리사ㆍ법무사 등 유사직역 공존 △소송 건수 정체 등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더해 해마다 변시 합격자도 과다 배출돼 실무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부실 변호사’가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변협은 올해 2월 이종엽 신임 협회장 체제로 바뀐 이후, ‘신규 변호사들에 대한 실무교육 부족이 법률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주장을 집중 제기하고 있다. 변호사법상 신규 변호사가 단독으로 법률사무소를 내거나 법무법인에 정식 취업을 하려면 법원ㆍ검찰청ㆍ법무법인 등의 기관에서 6개월 이상 실무교육을 받아야 한다. 해당 실무교육은 변협 연수로 대체할 수도 있는데, 2012년 436명이었던 변협 연수 신청자는 지난해 789명으로 급증했다. 작년 변시 합격자(1,768명)의 44.6%가 실무현장이 아니라, 변협에서 강의식 교육을 받은 셈이다. 변협 관계자는 “올해 합격자도 1,200명이 넘으면, 신규 변호사의 상당수가 취업에 실패하고 충분한 실무교육도 못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호사 배출을 늘려 저비용ㆍ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로스쿨 제도 취지가 퇴색됐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사법시험 출신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워낙 경쟁이 치열해 민사소송의 경우, 변호사 수임료가 건당 200만~300만원 선까지 떨어졌다”며 “사실상 제살 깎아먹기 경쟁인데,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비 변호사를 양성하는 로스쿨 측 입장은 다르다. ‘합격의 문’이 좁아질수록, 로스쿨 교육은 ‘변시 통과’에만 매몰된다는 것이다. 한국법학교수회는 9일 성명서를 통해 “사법시험 폐지는 시험을 통한 ‘선발’이 아닌,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법조인을 배출하려는 목적이었다”며 “변시 합격자를 줄이면 고시 낭인 양산, 법학 교육 비정상화 등 사법시험 폐해가 고스란히 재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정 점수만 넘기면,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자격시험으로 바뀌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해법은 오히려 변협이 쥐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률시장 확대와 부실 변호사 징계, 연수 내실화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신규 변호사들의 실무교육 기회를 넓히고 유사직역 문제를 해결하는 게 변협의 역할”이라며 “법률시장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합격자 수를 줄이자고만 하는 건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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