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백화점이 고전 중인 시내면세점을 빼고 그 공간을 백화점 매장으로 채우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시장이 지난해 코로나19로 된서리를 맞았지만 최근 현대백화점 ‘더현대 서울’이 백화점 부활의 공을 쏘아올린 것과 무관치 않다. 백화점 빅3(롯데·현대·신세계) 중 2위 자리를 놓고 다투던 현대가 승기를 잡자 다급해진 신세계가 전략 수정에 속도를 낸다는 해석이 나온다.
11일 면세업계에 따르면 서울 반포동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안에 자리한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은 이르면 오는 7월 중순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강남점이 철수할 경우 그 자리는 백화점 매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철수설이 부상한 건 코로나19로 인한 외국인 방문객 감소로 시내면세점 고난의 시기가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서울 중구 본점 내 면세점 매출이 급감하자 지난해 신세계면세점을 운영하는 신세계디에프에 현물출자를 하기도 했다. 그동안 면세점으로부터 적정 임대료를 받다가 아예 건물자산을 현물로 지원해줘 신세계디에프가 임대료를 내지 않도록 한 것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손님이 없는 면세점 공간을 백화점으로 돌려 붐이 일고 있는 오프라인 매출 상승세에 편승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신세계디에프는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지난해부터 매출은 떨어지는데 임대료는 계속 나가고 있어서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면세업계에는 최근 서울 삼성동 롯데면세점 코엑스점도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가방 브랜드 ‘롱샴’과 남성용 액세서리 브랜드 ‘맨즈콜렉션’이 퇴점하자 오랜 침체로 불안을 느끼던 입점 업체들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두 브랜드가 나간 자리는 현재 비어있는 상태다. 그러나 롯데면세점은 이같은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면세점 매장에선 브랜드 교체가 수시로 이뤄진다”면서 “면세점 축소나 철수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롯데면세점 코엑스점의 면세사업 특허 만료는 내년 말까지다.
땅값 부담이 큰 도심 요지에 자리 잡은 시내면세점 철수설이 끊이지 않는 건 방문객 수가 곤두박질한 탓이다. 내국인의 해외여행이 1년 가까이 멈춰 시내 면세점을 찾을 일이 없어졌고 외국인 방문객 수도 급감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 면세점 매출은 1조1,687억 원으로, 1월의 1조3,831억 원보다 15.5% 감소했다. 외국인 방문객 수는 4만4,044명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현상유지를 하고 있는 면세점들도 사업구조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이 철수하면 그 자리에는 백화점 매장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면세점이 고전한다고 해서 백화점으로 즉각 바꾸기는 쉽지 않고, 면세점이 철수해도 당장 백화점으로 채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공간을 임대한) 센트럴시티와 협의해야 할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면세점 특허 반납 등의 절차도 밟아야 하지만 원활한 협의가 이뤄진다면 신세계백화점은 기존 면세점 공간을 활용해 온라인에 없는 백화점의 장점을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2016년 신관을 증축했고 지난해부터 전면 리뉴얼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3층 명품 매장을 아트스페이스로 꾸민 뒤에는 큐레이터를 상주시켰고 해외 신규 명품 브랜드도 대거 입점시켰다.
롯데백화점 본점도 연내 명품 매장 면적을 두 배 규모 이상 늘려 매출을 견인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코로나19 타격이 비교적 적었던 명품 부문을 확대해 젊은 소비자를 붙잡겠다는 전략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침체기를 겪는 백화점 산업의 경쟁자는 온라인”이라며 “온라인에서 누릴 수 없는 공간의 특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저마다 고객의 생활을 점유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