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11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 ‘부가티’ 브랜드 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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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4 12:30

베이론과 시론, 디노 등 비교적 최근의 존재감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부가티는 어느새 110년이 넘은 역사를 이어온 ‘장부 브랜드’라 할 수 있고 실제로 다양하고 가치 높은 차량들을 꾸준히 선보여 왔던 브랜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역사를 아는 이들에게는 꽤나 매력적인 브랜드, 의미 있는 브랜드로 평가받고 있다.

과연 부가티는 어떤 역사,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등장과 함께 브랜드의 격을 끌어올린 부가티

1909년 자동차 역사에 등장한 부가티는 말 그대로 가장 고급스럽고 가장 섬세하게 제작된 ‘명품’을 추구한 브랜드였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은 가구 및 보석 디자이너였던 카를로 부가티(Carlo Bugatti)의 피를 이어 받은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의 욕심과 같았다.

실제 부가티의 설립자이자 부가티 브랜드의 이름을 결정짓게 만든 ‘에토레 부가티’는 말 그대로 욕심과 열정이 가득했던 인사였고, 1901년 자신이 설계한 첫 자동차를 시작해 몇 개의 업체를 거치면서 경험을 쌓은 후 곧바로 1909년, ‘부가티’ 브랜드의 시작을 알렸다.

브랜드 출범 이듬해 1910년, 부가티는 브랜드 최초의 자동차 ‘퍼 샹(Pur Sang)’을 공개한다. 타입 10으로 불린 부가티의 새로운 차량은 4기통의 1.3L 엔진을 품고 있었으며 유사한 구조를 가진 타입 13 역시 곧바로 공개되었다.

참고로 타입 13은 1911년 프랑스 그랑프리에 테스트 등을 목적으로 출전을 하게 되었다. 드라이버는 에토레 부가티가 아끼는 인사, 어니스트 프리드리히(Ernest Friedrich)였으며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특히 더욱 큰 엔진을 품고 있는 경쟁자들과의 승부 속에서 얻어낸 결과였던 만큼 더욱 큰 의미라 할 수 있었다.

이후 시속 160km의 주행 속도를 기록하며 부가티의 가치를 더욱 높였던 타입 18이 1912년 등장하게 되었고, 푸조 자동차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흥행 모델인 ‘베베(Peugeot Bébé)’의 설계를 담당하며 그 기술력을 입증했다.

덧붙여 추후 ‘브레시아(Brescia)’라는 별칭을 부여받은 타입 13 역시 등장했으며 브레시아는 다양한 섀시 및 구조 변경 모델(타입 15, 타입 17, 타입 22) 등이 1926년까지 생산되어 유럽의 많은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에토레 부가티의 지휘 아래 부가티는 실제 자동차 산업의 초기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부가티의 차량들은 뛰어난 완성도와 고급스러움, 그리고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 특히 못과 볼트 등의 체결 도구 없이 ‘짜 맞춤’ 기법을 앞세워 당대 최고 수준의 럭셔리카 브랜드로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참고로 부가티는 전쟁을 통한 ‘이득’을 얻은 브랜드 중 하나다.

대다수의 자동차 브랜드들이 전쟁을 마주하게 되면 브랜드의 주요 생산 종목이 일반적인 자동차에서 ‘군수 부품’으로 변하게 되고, 부가티 역시 제1차 세계대전을 겪는 과정에서 프랑스 군과 미군을 위한 전투기 및 여러 항공기의 엔진을 생산하게 되었다.

부가티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기계공학’에 대한 경험, 생산 프로세스의 개선 등 다양한 부분에서의 향상된 경험을 얻었을 뿐 아니라 라이선스 및 생산 대금 등을 바탕으로 회사의 체격 역시 빠르게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전쟁 후 활발하게 전개된 브랜드의 활동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 유럽은 다시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고 부가티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을 맞췄다. 전쟁을 통해 향상된 기계 공학 기술은 곧바로 자동차 산업 및 모터스포츠 부분에 적용되었고 제품 역시 보다 다채롭고 발전된 모습을 제시했다.

제품 부분에서는 타입 28의 프로토타입을 통해 8기통 3.0L 엔진을 품은 고성능 투어러에 대한 가치를 확인했고, 후술될 타입 29/30 고성능 대배기량 레이스카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된 타입 30을 통해 고성능 주행에 대한 만족감을 제시했다.

모터스포츠 부분에서는 1920년, 타입 13을 앞세워 프랑스 르망에서의 ‘샤르드 그랑프리’의 우승을 차지하고 1922년에는 80마력을 내는 타입 29/30, 1923년에는 타입 32 등을 고성능 레이스카를 선보이며 향후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대거 끌어올렸다.

그리고 1924년, 부가티는 브랜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레이스카라 할 수 있는 타입 35 레이스카가 등장했다. 데뷔 이후 10년 동안 2,000회의 레이스 우승을 차지한 8기통 레이스카는 향후 부가티의 ‘퍼포먼스 DNA’를 더욱 강렬히 제시했다.

특히 타입 35는 1925년, 당시 가장 혹독한 로드 레이스 중 하나로 평가받던 타르가 플로리오(Targa Florio)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누렸을 뿐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개발된 상용 판매 차량인 타입 37, 그리고 비슷한 시기 데뷔한 타입 40 역시 등장과 함께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으며 타입 43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가티는 이러한 경험, 그리고 브랜드의 인기에 발맞춰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바로 1929년 부가티의 첫 번째 오너스 클럽이 설립되었고,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며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깊은 오너스 클럽으로 활동 중에 있다.

계속되는 모터스포츠 활동을 통해 타르가 플로리오는 물론이고 모나코 그랑프리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펼쳤으며 1931년, 부가티 팩토리 팀으로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에 출전을 결정했다. 덧붙여 제품 라인업에서는 엔진의 크기를 4.9L까지 키운 타입 50, 유려한 디자인을 제시하는 타입 55가 등장하며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이러한 계보는 660대 정도 생산, 판매되었던 타입 57과 스포티한 이미지의 타입 57S, 또 고성능 레이스카 버전인 타입 57G 등으로 이어지며 부가티 포트폴리오가 더욱 다채롭게 구성되었다.

한편 이 시기 부가티는 프랑스의 국영 철도국 측에 고속철도 프로토타입을 제시했다.

‘부가티 오토레일 프로토타입’으로 명명된 부가티의 새로운 고속철도는 여러 테스트를 통해 192km/h의 고속 주행 성능을 달성하며 ‘부가티의 성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입찰 및 상용화에는 실패하며 ‘부가티의 도전’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멈춰버린 부가티의 공장

제1차 세계대전에서 부가티는 ‘새로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아쉬운 일이 가득했다.

빠르게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는 에토레 부가티에게 1억 5천만 프랑을 지급하고, 부가티의 공장을 강제 매입했다. 나치는 부가티의 공장에서 나치의 군대를 위한 수륙양용 차량 및 다양한 군수품을 제작, 서부 전선으로 지속적으로 투입했다.

이는 부가티에게 뼈아픈 일이 되었다. 실제 부가티는 차량 생산은 물론 ‘기술 습득’의 경험을 누릴 수 없게 되었고 브랜드의 가치, 그리고 브랜드의 경쟁력이 빠르게 상실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특히 전쟁 중 새로운 공장을 마련하고 새로운 차량을 개발, 생산하려 했으나 생산 효율이나 실제 판매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브랜드의 타격이 되었다.

연합군의 전쟁이 끝난 후 공장을 되돌려 받았으나 회사의 자금이 많이 소진되었던 만큼 새로운 차량 생산에 대한 능력이 대거 떨어졌을 뿐 아니라 타 브랜드들이 전쟁 중 군수품 생산으로 얻게 된 기술 향상 및 생산 절차의 개선 등의 ‘부가적인 경험’ 역시 얻지 못하게 되어 시장 경쟁력은 대거 하락하게 되었다.

게다가 부가티 설립 이후 브랜드를 진두지휘했던 에토레 부가티가 사망하고 난 후에는 브랜드의 역량은 더욱 하락하게 되었고, 결국 브랜드의 지속을 위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1956년, 부가티는 브랜드 활동의 모든 중단을 맞이하게 되었다. 47년 동안 7,900대의 작품을 선보였던 부가티의 ‘제1기’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새로운 도약에 나선 부가티의 두 번째 역사

사라진 자동차 브랜드는 보통 추억의 대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부활시키고 싶은 유산’이 된다.

부가티가 그랬다. 이탈리아의 사업가 로마노 아르티올리(Romano Artioli)는 1987년, 부가티의 상표권을 인수, 이탈리아 모데나를 생산 거점으로 한 부가티 오토모빌(Bugatti Automobili S.p.A.)을 설립한다.

그리고 부가티 브랜드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 모델, 부가티 EB110이 등장한다. 1991년 파리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인 EB110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의 감성으로 그려졌으나 막상 시장에 선보인 EB110은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람보르기니의 짝퉁처럼 보이는 EB110은 부가티라는 이름 외에는 ‘고급스러운 명가’의 가치는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가티 EB110은 과거의 부가티가 가졌던 ‘빠르면서도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감성과 먼 다소 투박하고 일방적인 성능 지향적 성격을 가져 현재까지도 ‘부가티’로 인정받지 못할 정도였다.

EB110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파생 모델을 꾸준히 선보이는 듯했으나 결국 로마노 아르티올리가 이끈 2기의 부가티 역시 1995년 브랜드의 간판을 내리게 되었고, 이후 다우어 레이싱 등이 인수하여 재개를 노렸으나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폭스바겐 그룹이 이끈 3기 부가티의 역사

1998년, 폭스바겐 그룹은 부가티 브랜드를 인수했다. 그리고 부가티 브랜드에 대한 컨셉과 방향성을 새롭게 정의하고 4인승 쿠페 모델이며 미래 부가티에 담길 ‘상징적인 디자인 요소’를 품은 EB118을 공개해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부가티 EB118은 지금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여전히 어색하고 독특한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부가티의 역사적인 차량 중 하나인 부가티 타입 57SC 아틀란틱을 오마주한 차량으로 큰 의미를 품고 있었다.

덧붙여 폭스바겐 그룹은 EB118에게 W18 6.3L 엔진을 부여하며 부가티 브랜드가 앞으로 절대적인 성능의 매력을 제시할 것을 ‘행동으로 입증’했다.

이후 부가티 브랜드는 빠르게 판매 활동을 시작한 것이 아닌 브랜드의 방향성을 재정립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특히 이 시간은 폭스바겐 그룹 내에서 부가티에 대한 고민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실제 이 사이 등장했던 EB218 컨셉과 18/3 시론 컨셉은 말 그대로 상반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이론으로 시작된 부가티 퍼포먼스의 시대

브랜드의 방향성, 제품에 대한 전략을 완전히 수립한 후, 부가티의 거점을 다시 프랑스 몰샤임으로 옮겼다.

에토레 부가티 생가 인근에 자리를 잡은 부가티의 공장을 마련한 후 폭스바겐 그룹은 부가티의 엑셀러레이터 페달을 강하게 밟았다. 그리고 그 결과 2005년, 네 개의 터보차저를 품고 1,001마력이라는 압도적 성능을 제시하는 W16 엔진을 품은 부가티 베이론이 등장했다.

부가티 베이론은 부가티 브랜드 특유의 말발굽 프론트 그릴과 EB118부터 이어지는 수평으로 다듬어진 헤드라이트, 그리고 공기역학을 고려한 차체는 물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여느 슈퍼카들과 차원이 다른 고풍스럽고 우아한 공간을 제시해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부가티 베이론은 브랜드의 재도약의 기반이 되었고, 부가티 역시 다양한 버전의 베이론을 선보이며 전세계 부호, 속도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실제 부가티 베이론 그랜드 스포츠를 기반으로 다양한 파생 모델, 여러 인물에 대한 헌사를 담은 모델 등 수많은 존재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방점은 진정한 방점을 의미하는 ‘진정한 마지막’을 품은 2015년, ‘베이론 그랜드 스포츠 비테세 라 피날레(Bugatti Veyron Grand Sport Vitesse La Finale)’로 이어지며 ‘부가티 베이론’의 오랜 역사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시론과 디보…모두를 설레게 하는 부가티의 행보

베이론의 시대가 끝이 난 2016년 부가티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반영하고 더욱 대담한, 그리고 더욱 화려한 부가티의 아이콘, ‘부가티 시론’을 선보인다.

시론 역시 고유의 말발굽 프론트 그릴과 수평의 헤드라이트를 갖췄고, 차체에서는 베이론의 감성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성능 부분에서는 말 그대로 압도적인 개선을 통해 ‘부가티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부가티는 시론의 공개에 이어 시론 스포츠, 시론 슈퍼 스포츠 300+, 시론 퍼 스포츠 등과 같은 다채로운 모델들은 물론이고 브랜드 창립 110주년을 기념하는 시론 스포츠 110주년 에디션 등 다양한 파생 모델을 선보이며 ‘시론의 시대’에 힘을 더하고, 또 부가티의 매력을 더하고 있다.

참고로 지난해에는 차체 곳곳에 항공기를 떠올리게 하는 색상과 디테일, 그리고 다양한 디자인 요소를 적용해 부가티의 항공 산업과 모터스포츠 부분의 성공을 기념하는 특별한 존재, ‘시론 스포츠 레 레전드 뒤 씨엘(Les Légendes du Ciel)’을 공개하며 다양한 파생 모델의 매력 역시 널리 전하고 있다.

한편 2018년에는 아주 특별한 존재가 등장하기도 했다.

실제 2018 페블비치 콩쿠르 드 엘레강스에서 ‘부가티 시론’의 파생 모델이자 개량 모델로서 더욱 강렬하면서도 호화스러운 존재감을 과시하는 부가티 디보를 선보였다.

디보는 1920년대 부가티 타입 35에 올라 두 번의 포디엄 정상에 올랐던 드라이버 ‘알베르 디보(Albert Divo)’에서 따온 이름으로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존재였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부가티

2021년, 부가티 브랜드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폭스바겐 그룹은 오스트리아의 전기차 브랜드, ‘리막’에게 부가티 브랜드를 매각했으나 운영에 대한 끊은 놓지 않았고, 이와 함께 리막의 지분을 인수하여 ‘기업 간 협업’의 구조를 마련한 것이다.

이러한 행동을 통해 부가티는 새로운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다. 실제 브랜드 단계에서는 아직 전동화 파워트레인, 혹은 전기차 사양의 부가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상태는 아니지만 리막의 영향 덕분에 언제든 강력한 성능의 ‘부가티’는 연료를 가리지 않고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모클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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