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간 개발을 추진 중인데, 갑자기 공공 개발 후보지로 선정됐다고 하니까 한 방 맞은 기분입니다. 주민들 항의에 전화기가 불 날 정도예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1차 후보지로 선정된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1일 만난 옛 신길2구역 재개발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주민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정부의 ‘깜깜이 발표’에 분노했다. 이곳은 이미 주민의 89% 동의를 받아 민간 재개발에 나선 상황이지만, 아무 예고 없이 공공 개발 후보지가 된 것이다. 추진위 관계자는 “주민 항의 전화가 계속 온다. 공공 주도 개발은 1%도 생각 안 하고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혼란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옛 신길15구역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공공 재개발 소리는 처음 듣는다”면서 “지난번(3월 29일) 2차 발표할 때도 포함 안 되지 않았나”라고 되물었다. 지난해 5ㆍ6 공급 대책 중 하나인 공공재개발과 2ㆍ4 공급 대책인 공공주택 복합사업을 헷갈린 것이다.
공공재개발은 공공과 조합이 공동 시행,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공공이 단독 시행한다. 은평구 역세권 후보지의 토지주인 A씨도 “아무 소식도 못 들었고, 동네에서 아무 얘기도 안 나오던데 앞으로 어떻게 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며 황당해 했다.
이는 예고된 혼란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두 달간 고밀개발 후보지를 62곳 검토했지만 주민들의 참여 의사는 묻지 않고 지자체 추천만으로 21곳을 우선 선정해 발표했다. “평소 개발 요구가 높았던 지역”이라며 향후 주민 설득을 자신했지만 대부분 후보지의 현장 반응은 싸늘하다.
실제 옛 신길2구역ㆍ4구역ㆍ15구역은 예정대로 민간 재개발을 추진할 방침이다. 은평구 옛 증산4구역은 주민 371명이 "정부의 도심 사업지 지정에 반대한다"는 입장문을 서울시에 보냈다. 공공 주도 사업이 진행되려면 주민 3분의 2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처럼 지역마다 반발이 커지면 정부의 2만5,000가구 공급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현금청산' 대상자의 집단 반발 가능성도 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국토부는 2ㆍ4 대책 발표 직후인 2월 5일부터 개발사업 지역의 부동산을 취득하면 입주권을 주지 않고 현금청산하겠다고 밝혔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2월 4일 이후 주택을 사들인 사람 또는 토지주의 사업 동의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금청산이 현실화되면서 사업지구 지정 가능성이 높은 역세권, 저층주거지 등의 주택 거래는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중구 신당동의 공인중개사 A씨는 “2ㆍ4 대책 발표 이후로 거래가 ‘올스톱’이라 중개인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며 “어디가 선정될지 모르니 함부로 투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동작구의 공인중개사 B씨는 “이전엔 매수문의가 활발했는데 언제까지 거래가 위축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1차 후보지 인근 영등포구의 공인중개사 C씨도 “이번 발표로 매수 문의는 아예 사라질 게 명확해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이 시장을 위축시켰다고 지적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정부가 민간 택지 주민과의 협의 없이 진행하는 바람에 사업지가 어디가 될지도 모르는 불확실성을 가중시켰다”고 꼬집었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지정이 된 후에도 시세보다 낮은 보상을 받게 되는 현금청산 대상 주민의 이견으로 결국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