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출범한 지 113일(1일 현재)이 지나도록 사건 조사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그새 3,000건에 가까운 사건이 접수됐지만, 위원회가 공전을 거듭하면서 사건 접수 후 90일 안에 조사를 시작하도록 한 법령이 무색한 상황이다. 정근식 위원장은 "국민께 송구하다"며 이달 말까지는 첫 사건 조사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본보에 "첫 사건 접수 후 100일 이상 흘렀고, 지금까지 접수된 사건만 2,800여 건이 넘었지만 여전히 한 건도 조사 개시를 못하고 있다"며 "마음이 무겁고 관심을 보내주신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과거사정리법 제정으로 출범 토대를 마련한 제2기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12월 10일 공식 출범했다. 1기 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한 지 10년 만이다.
하지만 2기 위원회는 초장부터 삐걱댔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위원회 출범 시점에 조직 구성을 마쳤어야 했지만 위원들은 지난 1월에야 뽑혔다. 여기에 야당 추천위원이던 정진경 변호사가 선정 하루 만에 사퇴서를 제출해 또다시 차질이 빚어졌다. 후임으로 선정된 이순동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24일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으면서 위원회는 25일 첫 회의를 열 수 있었다.
위원회 구성이 지지부진한 사이 진실규명 요구는 빗발쳤다. 지난해 12월 10일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조사 요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접수된 사건 수는 2,900여 건(5,700여 명)에 달한다. 과거사정리법 시행령에 따르면 위원회는 진실규명 신청서가 접수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조사 개시 또는 각하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기한을 넘긴 사건이 계속 늘고 있다.
어렵사리 위원회 구성이 완료됐지만 조직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사무처를 지휘하며 실무를 책임져야 할 사무처장 자리가 공석이기 때문이다. 사무처장은 위원회 심의를 거쳐 위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인데, 위원회는 아직 심의 단계를 진행 중이다. 더구나 심의 과정에서 위원들이 위원회 심의 범위를 두고 이견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위원장은 신속히 조직을 정상궤도에 올리고 이달 말엔 첫 조사 개시를 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 △실미도 사건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 등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정 위원장은 "90일 안에 조사를 개시하겠다는 약속을 못 지킨 만큼, 기대를 갖고 기다려주시는 분들을 위해서 최대한 속도를 내려 한다"며 "여러 사건 조사를 동시에 개시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최초 조사 개시가 시작되는 날로부터 3년(1년 연장 가능)간 활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