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침투 조사가 불가피한 디지털 성범죄 수사를 위해 위장수사 기한은 늘리고, 피해자가 성인인 사건에 대해서도 위장수사를 허용해야 합니다."
31일 'n번방 수사팀'에 참여했던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 유나겸 경감은 힘주어 강조했다. 이날 유 경감은 여성가족부와 경찰청 주관으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회의실에서 열린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 성과와 과제’ 세미나 자리에 참석, 발표했다.
유 경감의 주장은 n번방 수사 당시 경험에서 나왔다. 당시 수사팀은 가장 보안이 강하다는, 최상위급이라는 ‘위커방’에 잠입하고자 했다. 그래서 운영자 '박사(조주빈)'에게 돈을 보냈는데 박사는 '형사와 기자를 걸러내야 한다'며 개인 신분증, 인증사진 등을 추가로 요구했다. 예기치 못한 요구에 당황한 수사팀은 부랴부랴 요구조건을 맞춰줬지만 생각보다 늦어지는 걸 의심한 박사는 위커방 입장을 불허했다.
n번방 사건 이후 개정된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이 9월 시행에 들어간다. 아동·청소년을 유인하는, 이른바 '그루밍 성범죄'를 형사처벌하고 경찰의 위장수사를 허용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수사 일선에 있었던 유 경감의 경험으론 부족하다.
유 경감은 우선 위장수사를 할 수 있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현재 아동·청소년에서 성인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경감은 “현행 규정에 따르면 피해자 중 아동이나 청소년이 없다면 위장수사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말했다.
또 위장수사 기한이 최대 3개월로 제한된 것도 문제다. 유 경감은 "텔레그램을 이용한 n번방 사건에서 보듯, 국제 공조가 필수적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디지털 성범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너무 짧다"고 했다.
적극적인 수사를 위해서는 위장수사 형태를 명확히 규정해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위장수사를 하려면 경찰 신분을 숨기거나 성착취물 구매자인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얘기다. 박미혜 하남서 여성청소년과장은 “명확한 규정이 없다 보니 경찰은 '이건 함정수사가 아니다'라는 판례에 의존해 수사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위장수사를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