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피해자 수 삭제... 침략→진출로 미화한 일본 교과서

입력
2021.03.30 19:23

30일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일본의 침략 전쟁이나 식민 지배를 미화하거나 모호하게 다루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날 시민단체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에 통과된 검정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특히 일본사와 세계사를 통합해 내놓은 ‘역사총합’ 교과서에 이처럼 정쟁과 식민 지배 범죄를 반성하지 않는 표현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침략을 '진출'로 표기

먼저 아시아 국가 침략을 ‘진출’로 표기한 교과서들이 검정을 통과했다. 예를 들면 다이이치가쿠슈(第一學習)사의 역사총합 교과서는 “일본의 아시아 진출은 한국 중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일본의 중국 진출과 일미의 대립” 식으로 한국 중국 침략을 ‘진출’로 표기했다. 데이코쿠(帝國)서원도 “일본은 시모노세키조약에서 식민지화한 타이완에 이어 대외진출을 진행했다” “왜 일본은 만주로 진출을 진행했던 것일까” 등으로 이후 한일 강제병합이나 만주사변을 ‘진출’로 미화했다. 시미즈(淸水)서원 역사총합(종합)은 만주사변이나 중일 전쟁 등을 다룬 코너에 ‘일본의 대륙 진출’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1995년 일본 정부가 발표한 무라야마(村山) 담화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침략'이라고 규정하고 사죄했는데 이런 평가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셈이다. 이와 관련해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진출'은 1982년 동북아시아에서 일본 교과서 역사 왜곡 문제를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 용어"라며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이 1982년 수준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위험한 징표"라고 의견을 밝혔다.


식민 지배 당시 범죄에 대한 기술은 축소, 삭제

식민지 지배 당시 일본의 범죄에 대한 기술은 약화시켰다. 시미즈서원 교과서는 중일전쟁 첫해인 1937년 12월 일본군이 난징(南京)을 점령한 것을 다루면서도 포로와 민간인을 마구잡이 살육한 난징 대학살에 관한 설명은 싣지 않았다. 데이코쿠서원 교재는 난징학살을 소개하기는 했으나 "사망자 수를 포함한 실태의 전체상에 관해서는 조사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모호하게 기술했다. 제2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시절 난징학살의 희생자 수를 기재했던 많은 교과서가 검정에서 수정 지시를 받았는데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출판사 측이 애초에 희생자 규모에 관한 구체적 설명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한 기술은 갈수록 은폐되고 있다. 2017년 이전 일본의 고교 교과서 중 상당수는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의 숫자를 본문에 기술해 왔지만 2017년 검정과정에서 ‘통설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각주로 처리된 바 있다. 이번에는 더욱 후퇴해서 각주에서도 기술이 사라지고 학살 주체마저 불분명하게 처리됐다.


전범재판에 의문 제기, '대동아공영권' 소개도

일부 교과서는 태평양전쟁의 책임마저 부정하려는 기술이 들어갔다. 특히 2차대전의 A급 전범을 심판한 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 의문을 제기한 메이세이샤(明成社)의 교과서마저 검정을 통과했다. 이 교과서는 도쿄재판에 관한 특별 칼럼을 게재하면서, 인도 출신 재판관 다비노드 팔이 평화에 대한 죄, 반인륜범죄는 사후법이며, 죄형법정주의 입장에서 피고인들을 유죄로 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모든 피고인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할 것을 주장했다는 사실을 자세히 소개했다. 도쿄재판의 타당성을 의문시하는 것은 일본 내 우익 세력이 주로 제기해 온 것으로, 교과서에 이런 견해가 자세히 실린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시미즈서원 교과서는 ‘대동아공영권’을 소개하기도 했다. 대동아공영권은 1943년 11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1884∼1948) 당시 일본 총리가 아시아 지역 점령지 등의 대표를 모아서 도쿄에서 대동아회의를 열고 발표한 대동아 공동선언에 담긴 개념이다. 이는 아시아 민족이 서구 세력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일본을 중심으로 뭉쳐 대항하자는 주장으로,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일본의 식민지나 점령지가 독립하지 못하게 하려고 고안된 것이다.

그런데도 시미즈서원 교과서는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는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표방을 서구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할 좋은 기회로 받아들여 일본에 협력하는 지도자도 있었다”고 기술했고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한반도 민중의 반발 등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새역모 교과서는 '임나일본부설' 입각 주장

한편 1년 전 83곳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돼 검정을 통과하지 못했던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중학교 교과서도 이번에 검정을 통과했다. 이 교과서는 강제동원에 대한 기술은 있으나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술은 없다. 게다가 임진왜란을 ‘조선출병’으로 기술하고 임진왜란을 ‘16세기 세계 최대규모의 전쟁’이었다고 미화했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가 지유샤의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 교과서에는 임나일본부 설치와 관련한 직접적인 기술은 없지만, 서술 내용은 4~6세기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직·간접적으로 지배했다는 전형적인 임나일본부설에 입각해 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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