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자의 진술이 수사·재판 과정에서 일부 바뀐다 해도 핵심 내용이 일관된다면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A씨는 2019년 1월 어느 날 오후 10시쯤, 사람이 많은 지하철 안에서 피해자의 치마 속에 손을 집어넣어 5분 동안 성추행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 B씨는 사건 발생 다음 날 경찰에서 “처음에는 서류가방에 닿은 것으로 생각했지만 자꾸 느낌이 이상해 왼쪽으로 한 걸음 피했는데, A씨도 나를 따라서 왼쪽으로 살짝 이동해 왼손으로 추행을 이어갔다”고 밝혔다. 다만 법정에서 B씨는 ‘경찰 조사 때는 흥분한 상태라 정확히 말하지 못했다’며 오른손으로 추행이 이뤄졌다고 번복했다.
1심은 “A씨가 추행행위를 한 손이 왼손인지 오른손인지, 추행 당시 서있던 위치가 피해자의 앞인지 오른쪽인지를 제외하고는 B씨의 피해 진술이 일관되다”며 A씨에게 벌금 800만원과 40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반면 2심은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보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가 성추행한 손을 ‘가방을 든 왼손’에서 ‘들지 않은 오른손’으로 바꿔서 지목한 데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는 A씨가 가방을 든 손은 확신하면서 추행한 손에 대해서는 헷갈리고 있다”며 피해자가 진술을 번복한 동기와 경위가 납득가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시 A씨는 왼손에 큰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부수적인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쉽사리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경찰 조사 당시 사건 발생 다음 날이라 경황이 없었고 흥분한 상태였다는 B씨의 진술번복 동기·경위는 납득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피해자가 ‘처음엔 바로 느끼지 못했다가, 30초 정도 뒤에 느낌이 이상해 이동했는데 A씨가 그때부터 노골적으로 따라 붙어 추행했다’, ‘3~5초 정도 눈으로 정확히 범행 장면을 목격한 뒤 정신을 차리고 따졌다’는 등 범행을 인지한 경위를 구체적으로 진술한 점도 유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