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조연' 박영선·오세훈 "나는 네가 2011년 한 일 알고 있다"

입력
2021.03.27 20:00
2011년 조연 박영선 오세훈, 2021년의 주역으로
'MB 아바타' '박원순 시즌2'로 '과거 프레임'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10년 전 열린 2011년 보궐선거에서 조연을 맡았던 이들이 이번엔 주연으로 나섰다.

당시 서울시장에서 스스로 물러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그리고 그의 사퇴로 열린 보궐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뽑혔다가 박원순 전 시장의 제3지대 돌풍에 밀려 입후보에 실패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서울시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된 것이다.

양당의 선거전조차 과거 소환에 열중하고 있다. 민주당은 오세훈 후보가 10년 전 서울시장으로서 시정을 잘못 꾸리다 중도 사퇴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박영선 후보를 그가 직전까지 장관을 지낸 문재인 정부의 실정과 연결시키면서 '정권심판론'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공식 선거 운동 초반 과거를 되돌아보고 서로를 비난하는 '네거티브 선거'가 돋보이고, 대신 정책이나 미래 비전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때 그 사람들

202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는 2011년 보궐선거와 묘한 평행을 이루고 있다. 우선 재직 중이던 서울시장이 떠나 공석이 된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점이 비슷하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다 사퇴했다.

야권의 단일화가 선거 직전 핵심 화두였던 점도 똑같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박영선 의원을 후보로 내세운 뒤, '제3지대'를 대표해 출마를 선언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대결했다. 결과적으로 박 상임이사가 승리해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 박 상임이사는 최종적으로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의 나경원 의원을 꺾고 서울시장으로 9년 동안 일했다.

올해 보궐선거는 바로 그 박원순 시장이 지난해 성희롱 폭로를 계기로 사망하면서 치르게 된 보궐선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당시 박 시장에게 패해 후보로 나서지 못했던 박영선 후보가 나서게 됐고, 야당인 국민의힘에서는 당시 선거의 '원인 제공자'인 오세훈 후보가 당시 여당 후보였던 나경원 의원에 앞서 후보로 나왔다.

또 그때나 지금이나, '제3지대'의 주역이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야권의 조력자에 만족하는 처지가 됐다. 다만 안 대표가 2011년 당시 스스로 후보 역할을 내놨다면 이번에는 경선 끝에 패해 물러났다는 점은 차이가 있다.



'그때 이야기' 꺼내는 양당

양측은 상대 후보의 과거의 잘못을 들추는 데 집중하며 '네거티브 경쟁'을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다.

민주당은 시장 시절 오세훈 후보가 무상급식 전면 도입에 반대해 시장직을 사퇴했을 뿐 아니라 각종 정책 실패를 낳았다며 그를 'MB(이명박) 아바타'로 규정했고, 내곡동에 있는 아내 소유의 땅을 개발 지역으로 선정해 '셀프 보상'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박영선 후보는 25일 유세 출정식에서 "이명박 시즌2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그동안 우리가 피땀과 눈물로 힘겹게 일군 민주주의와 경제민주화의 정의를 후퇴하게 둘 수 없다"고 했다.

앞서 그는 2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오 후보를 'MB 아바타'라고 부른 것을 두고 "실질적으로 MB 황태자라고 불리던 사람"이라며 "4대강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또 서울시정을 펼치면서도 당시 이명박 정권에서 정권의 실책과 관련된 걸 다 함께했던 분"이라고 했다.

또 내곡동 땅 의혹에 대해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의혹'과 흡사하다고 공세를 폈다.


이에 맞선 국민의힘 역시 정권 심판론에 불을 지피면서 박영선 후보를 '문재인 아바타' '박원순 시즌2' 등으로 부르는 한편 박 후보 남편이 보유했다 매각한 도쿄 소재 아파트를 집중 겨냥하는 등 네거티브 선거전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오세훈 후보는 25일 서울시청 광장 유세에서 "박영선 후보가 당선되면 저는 박원순 시즌 2라고 생각한다"면서 "박 후보가 당선되면 중앙정부와 다른 재개발·재건축 정책을 펼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박 전 시장의 성폭력 문제를 거론하면서 "박 전 시장에 의해 성추행 당하고, 다음 시정을 누가 맡을지 숨죽여 기다리는 피해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도 했다.

또 앞서 24일 기자간담회 도중에는 "갈라치기와 반통합, 분열의 정치를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독재자가 아니냐"라며 박 후보를 향해서도 "실정과 무능 대명사, 문재인 아바타인가 묻고 싶다"고 했다.

"과거 프레임 깨는 전략 구사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가 '과거 인물'들의 귀환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과거 문제를 들추는 '회고적 선거'가 되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는 인물 경쟁력도 큰 차이도 없고, 지금까지 야권 단일화에 모든 이목이 집중되면서 정작 여야 대결이 확정되고 나서는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가 됐다"며 "(이 때문에) 미래 비전을 두고 경쟁하기보다는 개인 후보의 의혹에 집중하는 흐름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봤다.

그는 "특히 여론조사에서 밀리는 여당이 네거티브 유혹을 많이 느끼고 있는데, 야당 쪽도 맞불을 놓으면서 혼탁한 네거티브 선거로 가게 됐다"고 했다. 그는 "유권자의 피해도 피해지만, 결국 네거티브를 과도하게 하는 쪽이 제 살을 깎아먹는 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두 진영이 미래에 서울을 어떻게 하겠다는 전망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상대 후보가 과거에 어땠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면서 "이 프레임을 유권자들에게 강요하고 있고, 유권자들 또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는 "특히 민주당은 오세훈 후보를 공략해야 하는데, 10년 동안 정치 일선에 없었기 때문에 그 이전(서울시장 재직 시절)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양측 모두 상대 진영의 네거티브 공세로 형성된 틀을 깨는 전략을 구사해 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그는 박영선 후보가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만난 것을 "문재인 정부 실정과 박 후보를 동일시하려는 국민의힘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세훈 후보에 대해서도 "민주당의 과거 실정 프레임에 맞서 시장 시절 못다한 것을 완수하겠다는 식의 공약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큰 변화 없는 거대 양당의 대결 구도가 고착화한 상태에서 현재와 같은 '네거티브 선거' 구도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정치 여론 지형은 정당의 정책에 대한 지지보다는 상대 정당의 실패에 따른 반사 이익을 얻는 '네거티브 파티전십(Negative Partisanship)'의 양상을 띠고 있다"며 "상대가 못하기를 바라니까 늘 네거티브 선거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이번 선거에 10년 전 옛 인물이 나온 것 자체는 정당이 새로운 인물을 내놓을 능력이 없는 점도 있지만 유권자들도 검증된, 연륜과 경험이 있어서 관리를 잘 할만한 인물을 원하는 심리도 작용한다"며 "정치인들은 나를 이끌 지도자가 아니라 나를 대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유권자들이 정치권에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