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박물관 9월 개관... "봉준호 이창동 감독 작업도 전시"

입력
2021.03.2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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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엔 인터넷 가상 박물관 열어


“1927년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설립 이후 90년 넘게 박물관 건립은 숙원사업이었습니다.”

23일 오전 한국 기자들과 화상으로 만난 빌 크레이머 미국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 대표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세계 영화의 수도 로스앤젤레스에 영화의 역사를 오롯이 담을 수 있는 박물관을 지어 9월 30일 개관할 수 있어서다. AMPAS는 영화인들의 권익과 영화 발전을 위해 설립된 단체로 아카데미영화상을 주최하고 있다.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은 로스앤젤레스 중심부 윌셔가와 페어팩스가가 교차하는 사거리에 있다. 1937년 건축된 5층짜리 사반 빌딩을 개축하고, 그 옆에 돔형 건물을 새로 지어 박물관을 꾸몄다.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유명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했다. 유리다리로 연결된 두 건물의 연면적은 약 2만7,870㎡다. 유명 영화 제작자의 이름을 딴 데이비드 게펜 극장(1,000석) 등 상영관 2곳과 더불어 다양한 전시 시설을 갖췄다.

테드 사란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책임자(CEO)가 박물관 이사회 의장을 맡았고,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등 유명 영화인들이 이사진을 구성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공개된 박물관 소개 영상에서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이 우리에게 영화의 더 큰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더없이 귀한 기회를 줄 것"이라고 의미를 두었다.



영상을 통해 공개된 박물관의 면면은 흥미롭다. 대형 전시실 스필버그 패밀리 갤러리는 미국 영화 역사를 중심으로 세계 영화사를 품는다. 세계 영화 7,000편을 편집한 12분짜리 영상이 상영된다. 오스카의 92년 역사를 기록한 전시실을 따로 마련하기도 했다. 백인 위주에다가 여성을 배제했던 암울한 오스카의 과거를 직시하는 공간이다. 시드니 포이티어(흑인 최초 남우주연상 수상), 리타 모레노(라틴계 최초 여우조연상 수상), 마리 매틀린(청각장애인 최초 여우주연상 수상) 등이 이룬 성취를 상세히 다룬다. 크레이머 대표는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전통적 서술기법에 도전하고, 영화 제작의 전체적인 맥락을 제공하며 영화 제작 공동체 안에서 발생한 문제를 고쳐나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영화의 역사와 우리 영화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영화 관련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되기도 한다. 전설적인 영화 ‘시민 케인’(1941)의 유명 소품인 ‘로즈 버드’ 썰매 등을 볼 수 있다. 미국 유명 감독 스파이크 리의 사무실 소장품으로 꾸린 전시실도 있다. 관람객이 영화인처럼 오스카 트로피를 받기 위해 무대로 나가는 체험을 해보는 시설도 흥미롭다.

박물관은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다음 달 25일)에 맞춰 다음 달 22일 인터넷에 가상 박물관을 연다. 재클린 스튜어트 박물관 최고예술프로그램책임자는 “가상 박물관은 누구나 전 세계에서 이용 가능하다”며 “오스카에서 큰 족적을 남긴 배우 소피아 로렌, 우피 골드버그, 마리 매틀린, 가수 버피 세인트 마리가 참여하는 ‘오스카의 유리천장 깨기’가 첫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9월 개관 기념으로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회고전이 미국 최초로 열린다. 개관 전시에는 봉준호, 고 김기덕, 이창동 감독 등 한국 영화인들의 작업 역시 포함될 예정이다. 크레이머 대표는 “1만여 명 AMPAS 회원들과 협업을 통해 90년간 전 세계에서 모은 영화 자료 등을 활용해 박물관을 꾸려 나갈 것”이라며 “AMPAS가 전 세계적인 조직인 만큼 박물관도 전 세계적인 장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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