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솔로 앨범 낸 정원영 "개인적 이야기지만 보편적으로 들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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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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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친구를 떠나 보내면 나만 느끼는 슬픔이고, 나만 힘들다 느꼈어요. 그런데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보니 누구나 힘든 경험을 하고 누군가를 떠나 보내고 있더군요. 그런 개인적인 경험이 실은 보편적인 일이라고 느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이자 실용음악과 교수인 가수 정원영(61)이 지난달 6년 만에 정규 8집을 냈다. 지난해 정원영밴드의 리더로서 앨범을 낸 지는 8개월 만이다. 3년 전인 2018년 발표한 미니앨범 ‘테이블 세터’ ‘우중간 밀어치기’에 담았던 총 7곡을 다시 매만지고 신곡 3곡 ‘오래달리기’와 ‘양평에서’ ‘볕’을 더해 완성했다. 음원 발표 이후 6월 말 바이닐(LP) 음반을 낸다. CD 발매도 고려 중이다.

앨범 제목은 따스한 봄날의 온기를 전하는 ‘볕’이지만 에릭 사티를 연상시키는 첫 곡 ‘오래달리기’와 앨범 제목과 같은 ‘볕’은 늦은 밤의 고독과 어울리는 피아노 연주곡들이다. 영화 ‘나를 떠나지 마’에 영감을 얻은 연주곡 ‘Never Let Me Go’와 가수 일레인이 부른 ‘Adele’ 역시 누군가와 함께하는 햇볕의 활기보다는 홀로 있는 밤의 서정을 그린다.

앨범을 관통하는 정서는 소중한 사람을 떠나 보낸 뒤의 상실감과 외로움이다. ‘친구에게’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간 소중한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 3년 전 발표했던 곡이다. 그는 이번 앨범을 소개하는 글에 “최근 몇 년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었다”면서 “음악에 의지하며 지내는 날들이 길어지면 이런 음악이 떠오르는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에게 건네는 고백일까”라고 자문했다.

그래서인지 크레용 세트처럼 예쁜 색감의 재킷 표지와 ‘볕’이라는 제목에선 애써 슬픔을 받아들이고 희망을 찾으려는 의도가 읽힌다. 최근 서울 성수동에서 만난 그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골목길에 나가 등 기대고 햇볕을 쬐고 있으면 시간이 정지된 듯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잖아요. 어떻게든 희망적인 제목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이러한 뜻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 ‘양평에서’다. 경기 양평에 있는 친구 집에서 가끔 오랜 친구들과 만나는데 바로 그 친구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리울 땐 손 흔들어 / 우리가 너를 잘 볼 수 있게’라고 노래하는 이 곡은 힘들면 숨기지 말고 티를 내면서 살자며 친구의 손을 꼭 잡는다.

그는 실용음악과 교수로 3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번 앨범엔 제자들을 생각하며 쓴 곡도 있다. “계속 음악을 할 거라면 두 번째 직업을 가지라고 말해줍니다. 1%의 유명한 음악인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두 번째 직업, 세 번째 직업이 있거든요. ‘오래달리기’는 아이들에게 인생은 오래달리기 하듯 천천히 가야 한다고 말하는 곡인데 사실 저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1980년대 그룹 사랑과 평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건반 연주를 맡으며 음악 활동을 시작한 정원영은 미국 버클리음대 유학 후 돌아와 1993년 데뷔 앨범 ‘가버린 날들’을 시작으로 8장의 솔로 앨범과 3장의 정원영밴드 앨범을 발표했다. 그는 “데뷔할 때 서태지, 김건모가 인기였는데 어차피 그들과 경쟁이 안 되니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만의 음악을 하게 됐다”며 “내가 하는 음악은 가장 자연스러운 나를 담은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음악을 만드는 일이 가장 즐겁다는 그는 벌써부터 다음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학생들 가르치는 데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지만 가장 재미있는 일은 음악을 하는 것입니다. 이번 앨범 마친 뒤에 다음 앨범은 댄스 음악 중심으로 할까 생각 중이에요. 미디(컴퓨터 음악)도 배울 계획입니다. 스케치를 해놓은 곡도 있는데 이번 앨범처럼 어두운 곡은 안 쓰려고요.(웃음)”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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