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된 향나무 잘라낸 대전시, 법규 무시한 채 멋대로 리모델링

입력
2021.03.18 17:20
대전시, 소통협력공간 사업 감사결과 발표
충남도 등 소유주 동의없이 제멋대로 리모델링
행정부시장, "절차 이행 제대로 안 돼...입주기관 일부 특혜 소지도"


대전시가 옛 충남도청사 부속건물 리모델링을 하면서 소유주인 충남도의 허락을 받지 않고, 건축법 등 각종 법규를 잔뜩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철모 대전시 행정부시장은 18일 시청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옛 충남도청사에 '소통협력공간' 조성사업을 하면서 관계기관의 승인 없이 공사를 강행하고, 이 과정에서 각종 법규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시는 지난해 6월부터 옛 충남도청 의회동과 부속건물을 증·개축해 회의·전시 공간을 만드는 소통협력 공간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엔 사회적자본지원센터, 사회혁신센터, 공유주방·카페갤러리 등이 들어선다. 사업비는 시설비 63억5,000만원, 프로그램 운영비 60억원 등 총 123억5,000만원이다.

시는 이와 관련, 지난해 11월부터 옛 도청사 내 무기고와 우체국 등 부속건물 리모델링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소유주인 충남도의 허락도 받지 않은 데다 관할 중구청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는 절차를 이행하지 않아 관련법을 위반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담 103m를 손보면서 울타리에 있던 수령 70~80년의 향나무를 잔뜩 폐기해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서 부시장은 "옛 충남도청사의 수목제거 및 담장철거, 부속건물(무기고, 선관위, 우체국)에 대한 리모델링 공사는 사업부서에서 문체부를 4차례 방문해 협의했지만, 소유자인 충남도나 문체부의 공식적인 승인 없이 무단으로 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감사결과 드러났다"고 했다.

서 부시장은 이런 행위가 공유재산법과 지방공무원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옛 충남도청사의 무기고 등 부속건물은 현재 충남도 소유이며, 나머지 대금 결제가 완료되는 오는 6월쯤 문화체육관광부로 넘어간다.

해당 부속건물 리모델링 공사 과정에서 법규를 위반한 사실도 적발됐다. 시는 부속건물인 우체국, 무기고동의 2층 바닥과 내외부 계단을 철거하는 등 주요 구조부를 해체하는 대수선 공사를 진행했다. 부속동 3개의 연결복도를 철거한 후 재설치하는 증축행위도 했다. 대수선은 건축물의 기둥이나 보, 내력벽, 주계단 등 구조 또는 외부 형태를 수선·변경하거나 증설하는 행위로, 관할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건축법에 규정돼 있다. 시는 하지만 이 작업 진행 과정에서 관할 관청인 중구청과 협의하지 않은 물론, 허가를 받지도 않았다. 시는 이도 모자라 내진성능 평가용역 결과 내진보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내진설계 보강 없이 건물 내부만 구조보강하도록 설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서 부시장은 "건축법, 지진·화산 재해대책법, 지방공무원법 등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문제가 많았음을 인정했다.

사업 과정에서 불거진 특혜 의혹도 일부 소지가 있다고 시인했다. 옛 의회동 일부에 사회적자본지원센터가 입주하는 것처럼 설계에 반영했는데, 이 센터는 리모델링 업무를 담당하는 간부가 개방형으로 임용되기 전 재직한 곳이다.

서 부시장은 "입주하려면 운영협의회 심의를 거쳐 시장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마치 입주가 확정된 것처럼 설계에 반영하는 등 사전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일부 특혜적 소지는 있다"고 말했다.

시는 사업을 강행하면서 현장에 있던 향나무 1,218주 가운데 481주를 무단 제거해 737주만 남은 것으로 파악됐다. 향나무는 197주 중 114주가 제거됐다. 여기엔 수령이 각각 105년, 110년이나 된 된 향나무가 각각 1주씩 있었다. 사철나무는 58주 중 36주, 측백나무는 15주 중 10주, 회화나무는 8주, 히말라야시다는 5주 중 3주가 각각 폐기됐다.

서 부시장은 "성과를 내야 하는 촉박한 일정 속에서 관련 공무원들이 절차를 지키지 않고 욕심을 낸 것이 원인"이라며 "시민들에게 큰 실망과 우려를 끼쳐드려 매우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징계 대상자 5명 가운데 과장은 사퇴했고, 나머지 4명에 대해선 감사위원회에 상정해 징계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최두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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