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급여와 기본 경비 업무 외 감정노동까지 수행하고 있는 아파트 경비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재개발·재건축 허가 조건으로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를 내건 지자체가 등장했다. 에어컨 설치비를 지원하는 자치구는 있지만, 이처럼 개발 계획 단계에서부터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를 사실상 강제한 곳은 처음이다.
서울 동대문구는 18일 아파트 등 공동주택 경비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경비원 근무환경 개선 조건부 재개발·재건축 허가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대상은 50가구 이상 재개발·재건축 사업구역으로, 구는 경비실에 냉·난방시설은 물론 화장실, 간이 샤워실 등을 갖추고 식사가 가능한 수준의 휴게실을 갖출 것을 규정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여름이면 찜통이 되거나, 화장실조차 제대로 갈 수 없는 경비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지난해 12월 경비노동자 인권 보호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며 "이 조례를 근거로 이 같은 대책을 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는 2일부터 시행됐으며, 시행 직전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을 받은 제기1구역 경동미주아파트 재건축사업 현장에 이 조치가 처음 적용됐다. 구는 현재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29개 구역 중 인가 이전 단계에 있는 18개 구역의 설계도에 경비실 내 휴게·편의시설 및 냉·난방설비 등을 강제할 예정이다. 구 관계자는 "이미 인가가 난 11개 구역에도 행정지도와 사업시행계획 변경인가를 통해 경비원 근무 환경 개선을 유도하고 있다"며 "대부분 긍정적인 의사를 표명한 상태"라고 말했다.
구는 또 경비실에 편의시설 등을 갖추는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미니태양광 발전설비' 설치도 권고하고 있다. 이는 경비실의 냉·난방시설 가동에 따른 관리비 상승 등으로 생길 수 있는 입주민과의 갈등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유덕열 구청장은 "이번 정책으로 경비원들이 수준 높은 경비서비스를 제공할 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됐다"며 "경비노동자와 입주민 모두 만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