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감상, 넌 전시회만 가니? 난 공동구매하고 렌털한다!"

입력
2021.03.22 04:30
21면
유명작가 작품 소액투자 공구  인기
인테리어 관심 3040 여성들
원화 빌려 집에 걸고 주기적 교체
MZ세대는 전시 감상보다 '직접 소비'


2분 38초. 9만 조각으로 나뉜 이왈종 작가의 ‘제주생활의 중도(2018년작)’가 다 팔리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새로운 공동구매 미술품이 공개된 지난 16일 오전 10시, 미리 설정해둔 알람에 맞춰 재빠르게 신한은행 애플리케이션(앱)에 들어간 덕에, 가까스로 이왈종 화백의 작품 공동구매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 앱은 신한은행이 온라인 미술품 경매사인 서울옥션블루와 함께 미술품을 공동구매하고 투자할 수 있게 운영 중인 플랫폼이다. 소액 투자인데다 국내 유명 작가의 작품이어서 구매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기자가 9만 조각 가운데 분양 받은 조각은 20조각. 조각당 가격은 1,000원으로, 플랫폼 수수료를 포함해 총 2만1,100원이 들었다. 작품은 빠르면 수십 일 내 길더라도 수 개월 안에는 재판매된다. 거기서 나온 수익은 9만 조각의 지분을 가진 여러 참여자들이 나눠 갖게 된다.

미술품을 향유하는 방식이 다변화하고 있다.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공동구매, 렌털, 투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품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고가의 미술품을 공동구매하는 게 대표적이다. 그림을 온전히 가질 수 있는 것도, 미술품을 집에 걸어두고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미술품 공동구매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참여하는 연령대도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온라인 미술품 공동구매 서비스 플랫폼인 아트앤가이드 운영사 열매컴퍼니의 관계자는 “자사의 경우 공동구매자에게 작품 확인서를 보내는데, 한쪽 면에 작품 이미지가 있어 액자처럼 걸어둘 수 있고, 원화 역시 공동 소유자에 한해 사전 예약을 하면 오프라인 공간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다”며 인기 이유를 설명했다.


여모(36)씨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아트앤가이드를 통해 두 점의 미술품을 공동 소유했다. 모두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우환 화백의 작품이다. 여씨는 “평소 미술품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게 재테크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돼 참여하게 됐다. 아직 공부 단계라 유명 작가 작품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원화를 빌려 집에서 감상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그림 렌털은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최근 수요가 폭증했다. 월정액제로 원화 대여 서비스를 제공해 오고 있는 오픈갤러리의 경우, 작년 말 기준 이용자 수가 2019년 초에 비해 4배 이상 늘었다. 박의규 오픈갤러리 대표는 “찾는 분들의 80% 정도가 원화를 한 번도 집에 걸어본 적이 없는 분들”이라며 “과거엔 ‘내가 걸어도 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그런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주 고객은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3040 여성이다. 지난 7월 이사를 하면서 인테리어를 바꾼 박모(34)씨는 “집 인테리어 사진을 공유하는 앱에 자주 들어가는데 최근 들어 원화를 건 집들이 눈에 많이 띤다”며 “전시회에서 산 포스터를 걸어두었는데, 같은 풍경이 지겹기도 하고 질감, 색감 등의 차이에서 오는 원화만의 감동이 있어 그림 렌털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림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면 업체마다 다르긴 하지만 3개월, 1년, 2년 등의 주기로 교체가 가능하다.


전시장에 가지 않고 굿즈(기념품)를 바로 소비하는 패턴도 MZ세대를 중심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MZ세대는 198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와 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행한 ‘MZ세대는 예술과 어떻게 가까워지고 있을까?’ 보고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굿즈인 고려청자 문양의 질감과 토대로 만들어진 핸드폰, 이어폰 케이스가 판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되는 등의 사례에서 MZ세대가 소유 그 자체보다 과정과 경험을 즐기는 걸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이지현 K-ARTMARKET 객원 편집위원(널위한문화예술 COO)은 MZ세대의 굿즈 소비 현상에 대해 “예전에는 자신의 독특한 성향을 드러내는 걸 꺼려 했지만, MZ세대는 개성을 표출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며 “굿즈는 이들 세대에게 생활 속 자신의 취향을 은연 중에 드러낼 수 있는 도구”라고 덧붙였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 소장(강남대 경제학과 교수)은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문화 관련 소비 시장도 자연스럽게 커진 결과”라며 “특히 MZ세대의 경우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정보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다 보니 미술품에 대한 가치를 빨리 체득, 관련 소비와 투자를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경향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채지선 기자
신현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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