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2공항 건설을 둘러싼 도민 갈등에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당론에 따라 찬반 입장을 정하고, 상대방을 향해 날선 목소리를 쏟아내면서 정확한 분석·설득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지나치게 정쟁화하며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심상정 정의당 국회의원은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지사가 주민 뜻을 역행해 제2공항 사업을 강행하는 건 경악스러운 일”이라며 “도민들과 약속한 대로 즉각 제주 제2공항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대안 마련과 후속조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2공항 건설 찬반 여론조사에서 반대 의견이 우세하게 나왔음에도 이달 10일 원희룡 제주지사가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국토교통부에 공식 전달한 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심 의원은 원 지사가 그의 제주 방문에 맞춰 제안한 제2공항 토론에 대해선 “토론 할 시간은 이미 끝났다”며 “도민의 최종 의사가 확인된 만큼 뜻을 받드는 게 원 지사와 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앞선 13일 원 지사는 “일부 이야기만으로 도민을 선동하지 않길 바란다. 제2공항은 제주의 30년 숙원 사업이자 국민 안전을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국책 과제”라며 1대 1 공개토론을 요청했었다.
제2공항을 둘러싼 갈등이 오히려 격화하는 건 도민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여론조사의 구속력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라서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약속한 절차”라는 게 심 의원을 포함한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주장이다. 반면 원 지사는 “국책사업을 여론조사로 결정해선 안 된다”고 보고 있다. 그는 여론조사 실시 이전부터 결과는 정책결정을 위한 참고용이란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었다.
앞서 지난달 15일부터 사흘간 2개 여론조사기관(한국갤럽·엠브레인퍼블릭)이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선 반대 의견이 우세하게 나왔다. 반면 제2공항 대상지인 서귀포시 성산읍 주민 조사에선 두 결과 모두 찬성의견 비율(60% 이상)이 반대보다 두 배 많았다.
좁힐 수 없는 인식 격차에다, 지역 정치권 각 당의 이해에 따른 고성까지 오가면서 둘로 쪼개진 민심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당장 정의당 제주도당은 원 지사의 제2공항 건설 추진 입장 발표 직후인 11일 “민의보다 소신이 중요하다는 원 지사는 더 이상 지사 직에 있을 필요가 없다”며 쓴 소리를 냈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 소속 일부 제주도의원들도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원 지사는 국토부에 제출한 입장을 당장 철회하고 스스로 사퇴해 도민사회를 갈등과 반목으로 몰아넣은 현 사태를 책임지라”고 날을 세웠다. 반면 원 지사의 소속 당인 국민의힘 제주도당은 여론조사 이전부터 제2공항 찬성 입장을 당론으로 정한데 이어, 원 지사의 정상 추진 입장에 적극 지지를 표했다.
일각에선 말을 아끼던 원 지사가 ‘정면돌파’로 선회한 뒤 갈등의 중심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 지사는 최근 "제2공항 건설에 대한 최종 결정 책임을 제주도에 떠넘기고 있다"며 “제주공항을 죽이든 살리든 대통령과 국토부에서 결정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제주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원 지사의 행보는 제2공항 갈등을 해결하기 보단,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