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김헌동 본부장 "정부는 잘못 덮기 급급… LH 사태도 예견"

입력
2021.03.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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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대책 내놓기만 하면 집값 급등"
"고위직이 부동산 부자… 집값 잡히겠나"
"신도시 집값 계속 오르니 투기 조장한 꼴"

"실패한 부동산 대책으로 평가받는데도 집값이 잡힐 거라고 말하지 않나. 이 정도면 정부가 무능하다고 봐야 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부동산건설개혁본부를 이끌고 있는 김헌동(66) 본부장은 인터뷰 시작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까지 불거지자, 정부를 향한 그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김 본부장은 정부의 신도시 건설 정책과 관련해 첫 단추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신도시를 만들어도 서울 집값은 떨어지지 않고, 신도시로 지정된 곳은 오히려 부동산 값이 폭등하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은 "서울 집값 잡으려고 2기 신도시 만들었는데, 집값이 과연 안정됐느냐"며 "투기에 나선 LH 직원들은 3기 신도시로 폭리를 챙길 수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문제가 불거진 이면엔 잘못된 인사가 깔려 있다고 봤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인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투기 전문가들을 고위직에 임명해놓고 공기업과 공무원에게만 공정과 공익을 강조하면 소용이 있겠냐"며 "잘못을 저질러도 덮으려고만 하고 임명을 강행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지난해 50회 이상 기자회견을 할 정도로 부동산 정책을 비판했지만, 정권 초기부터 저격수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때는 새 정부에 바람을 드러내거나 방향성을 제언하는 정도에 그쳤고, 경실련을 진보시민단체로 바라보는 쪽에선 정부와의 '케미'를 기대하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중반부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경실련의 주된 타깃이 됐다. 김 본부장은 2019년 11월 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가 분기점이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당시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때 경실련은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값 변화를 조사하고 있었는데, 문 대통령 주장과는 달리 2년 새 30~40%가 올라 있었다. 김 본부장은 "재벌개혁과 부동산 투기 근절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아 정책 비판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실련이 정부에 등을 돌린 것도 아니고 변한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론 여권 인사들과도 제법 친분이 있지만, 잘못을 지적할 때 친소관계나 이념은 고려대상이 아니라고 그는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좋은 정책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경험과 지식에서 나온다. 부동산 대책을 두 달에 한 번꼴로 내놓기만 하면 집값이 오르는데 정책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부동산 정책을 다루는 고위공직자가 부동산 부자이거나 다주택자인데 무슨 수로 집값을 잡겠느냐"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20년 전 자식들이 집 걱정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민운동에 뛰어들었지만, 요즘 청년들에게 내 집 마련은 더욱 힘들게 됐다. 김 본부장은 "민간에서 지은 10억원짜리 집 옆에 정부가 3억원짜리 집을 분양한다면 누가 10억원에 집을 사겠냐"며 "공공이 값싸게 분양하면 집값이 떨어질 텐데 엉뚱한 대책만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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