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연호지구로 번진 투기 의혹…"무조건 오를 것" 직원 메신저 논란

입력
2021.03.11 17:00
원주민 등 LH와 토지 보상 문제 놓고 갈등
대구 A건설사, 타운하우스 건설 추진하다 공공택지
구역 확장으로 공사 계획 전면 중단... "피해 눈덩이"

10일 오전 11시 공공주택지구개발사업 구역인 대구 수성구 연호지구. 이곳 화훼단지를 비롯한 민가 주변에는 '헌법에 보장된 재산권 침해하지 마라', 'LH는 화훼인 잡지 말고 투기꾼 먼저 잡아라'는 등 LH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수 십개 내걸려 있었다.

연호지구 내 외지인 투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이곳 한 다세대 주택 주차장에는 먼지가 쌓이고 바람이 빠진 차량과 오토바이가 주차돼 있었다. 또 수개월 치 미납 연체요금 독촉 납부서와 수도 검침원의 방문 확인서가 우편함에 담겨 있었다.

이날 이곳 다세대주택 한 세대 창문 너머로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사람이 사는 곳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어렵게 만난 한 주민은 "이 다세대주택에는 차량만 주차돼 있고 사람이 오가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곳 부동산들의 주인이 바뀌기 전엔 분위기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공공택지지구로 지정된 연호지구가 속한 연호동과 이천동의 2017년 토지 거래량은 152건으로 전년(82건)보다 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곳 공공택지 지구 지정은 2018년 5월이뤄졌다.

최근 LH 대구경북본부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은 사내 메신저에서 연호지구에 대해 '무조건 오를 거라서 오빠 친구들과 돈을 모아 공동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이걸로 잘리게 돼도 어차피 땅 수익이 회사에서 평생 버는 돈보다 많다'는 대화내용이 공개되면서, 이 곳 주민들의 반감도 높아지고 있다.

연호지구 서편 구역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LH가 원주민에게 이주를 요구하면서도 토지 보상은 적게하려 한다"며 "과거 토지 보상과 관련해 다른 말로 주민 사이를 이간질하려 한 경우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연호지구에서는 LH와 갈등하고 있는 이들은 주민들 뿐만이 아니다. 공공주택지구 개발과 관련해 지역 건설사와도 충돌하고 있다. 대구 지역 한 중소 건설사는 연호지구에서 타운하우스 건립사업을 추진하다 LH의 말바꾸기로 800억원대 손해를 봤다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대구 A업체에 따르면 LH의 연호지구 공공주택지구개발사업 확장과 약속 불이행 등으로 인해 800억원 규모의 손해를 입었다며 지난해 12월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A업체는 지난달 감사원의 보완 요구를 받고 이달 중 추가 자료를 제출할 계획이다.

이 업체는 연호지구에 1만6,500여㎡ 부지를 매입하고 타운하우스를 지을 계획이었으나 착공을 5달 앞둔 2018년 5월 LH가 '연호공공주택지구계획공람계획'을 통해 사업 구역을 확장하면서 공사 추진이 전면 중단됐다.

이 주택지구계획은 당초 법조타운 등이 들어서는 동편 구역에 국한됐지만 추가 계획에 따라 도로 건너 서편 구역이 주거, 교육 공원 등으로 포함되면서 타운하우스 사업 부지도 편입된 것이다.

해당 업체는 당초 30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타운하우스 건립을 계획하고 입주자도 모집했다. 2018년 10월 착공해 올해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LH측과 보상 문제 등이 꼬이면서 계약취소가 잇따라 현재는 7세대만이 남았다. 업체 측은 추산되는 피해금액만 800억원이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체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협의양도택지를 요구했지만, LH는 사업권 명의 취득 시점을 문제 삼아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협의양도택지는 해당 지역에서 주택사업을 준비하는 건설업체의 토지를 일반 보상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수용하는 대신 해당 업체가 주택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토지다.

업체 관계자는 "대체 부지를 조성원가의 10% 가격으로 공급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당시 본부장이 직접 약속했지만 나중엔 입장을 바꿔 감정가로 매입하라고 했다"며 "비싼 가격의 감정가로 매입을 하면 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LH는 해당 건설사가 해당 부지를 공매로 싸게 매입한데다 LH가 규정하고 있는 토지 보상가와 차이가 있어 요구 사항을 들어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사업 구역 내 토지보상가는 감정가를 토대로 책정되고, 업체가 요구하는 조성원가 보상이나 협의양도택지 제공은 어렵다는 것이다.

양측의 협상은 지난해 4월부터 1년 가까이 교착상태에 빠진데다 LH직원이 업체 관계자와 협상 중 물병을 던져 폭행하는 사건도 발생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A업체 관계자는 "청년기업으로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 대구에 정착했지만, LH가 개발 이익을 노리고 기업과 주민 사이를 갈라 놓고 있다"며 "당시 약속을 했던 담당자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떠나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수백억원 피해뿐"이라고 하소연했다.

대구도시공사는 LH 투기 논란과 관련해 지난 2012년 이후 토지보상이 이뤄진 개발사업에 대해 직원과 직계 가족 등 투기 가능성 여부를 전면 조사한다. 공사는 개발 부지에 대한 임직원 및 직계가족과 배우자의 토지거래 및 보상 여부, 내부정보를 활용한 부당 투기 등 위법사항을 확인 중이다.

대구참여연대도 성명서를 통해 공직자와 정치인을 포함한 성역없는 조사를 촉구했다.

대구= 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