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에서 짬짬이 시간을 보내는데 이유도 모른 채 행복감을 느낀다. 자연을 만끽하기에는 아직 추운데도 재미가 쏠쏠하다. 마른 나무들과 말라비틀어진 풀뿐, 꽃 하나 피어있지 않은 겨울 빈 땅인데도 곁에 있으니 좋다. 시들어 색이 바랜 누런 풀밭과 아무 것도 자라지 않는 텅 빈 텃밭이야말로 겨울 풍경이 아닌가. 가까이서 느끼고 누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이고, 나는 '할 일'이 있어서 여기에 왔다.
추운 날씨라도 시골에서는 걷는 게 좋다. 넓은 저수지가 꽁꽁 얼었는데도 반짝이는 햇빛은 눈이 부시고, 머리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따뜻하다. 긴 줄에 묶인 까만 염소가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고, 작은 개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깡깡 짖어댄다. 한적하고 오래된 오르막길은 동네 할머니들의 산책 코스인가보다.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낯선 이에게 "어디서 왔느냐?" "어디 사느냐?"고 말을 건넨다. '집을 수리하고 새로 온 사람'이라고 인사를 하면 "아, 그 집, 알지" "아이구, 수리하느라 애먹었네"라고 한다. 곁에 있던 이웃집 할머니는 딸이 공사하고 감독한 것을 아는지라 "딸이 고생 많이 했지"라고 한다. 고요한 동네를 시끄럽게 만든 장본인을 정겹게 맞는다.
눈이 나풀나풀 내려 아름다운 날, 경쾌한 음악으로 기분을 돋웠다. 절로 목이 까딱까딱하고, 몸이 둠칫둠칫 움직인다. 춤을 추면 마음도 열리는지 마음속으로 행복이 슬며시 따라 들어온다. 열어놓은 대문으로 옆집 아저씨가 들어오는 바람에 혼자 춤추는 모습을 들켜버렸다. 민망해서 싱겁게 흐흐흐 헛웃음을 짓는 내게 "운동하면 좋지요!" 한다.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렸지만, 분명 따라서 웃었을 거다.
겨울의 한복판에서는 마당이 있어도 해야 할 일은 없는데도 남편은 분주하다. 무성하게 우거진 잡초들과 얽히고설킨 넝쿨들 덕분에 그는 '할 일'이 있다. 매일 바라보는 땅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돌보지 않은 남의 땅에 애정을 쏟는다. 장화를 신고, 귀마개를 하고, 장갑을 끼고, 도처에 자란 잡초를 잘라내고 온갖 종류의 끈질긴 넝쿨을 떼어낸다. 칭칭 감고 올라간 넝쿨에게 목이 졸린 나무들을 숨 쉬게 하고, 비와 햇빛을 받게 해준다. 아무런 저항 없이 버틴 나무들에게 자유를 준다.
쉬엄쉬엄 노는 것처럼 가볍게 '할 일'을 한다. 도시 속에서 매일 컴퓨터 앞에 묶여 있던 자신을 쉬게 한다. 몸의 긴장을 풀고, 시선과 생각을 돌려, 바쁜 자신으로부터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다. 모든 정신과 감각을 한 곳에 집중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흠뻑 빠지니,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수가 없다. 여태 '내 땅'을 가져본 적이 없는 그가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땅을 창조한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행복이다.
시골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신기하게도 바라는 것이 작아지고, 마치 찾던 것을 이미 얻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만하면 괜찮을 것 같고, 이거라도 충분할 것 같아진다. 더 이상 "그러면 정말 소원이 없겠다"는 말을 안 해도 될 것 같아진다. 원하던 단순한 삶이 가까워지고 아득하지 않아진다. 나는 이렇게 느끼고 이렇게 누리면서 살고 싶다.
느낌이 섬세해지고 생생해지는 것도 시골 덕분이다. 화려하고 풍족한 것이 아닌, 소박하고 순수한 것에 풍요로움을 느낀다. 삶이 안락하게 느껴지고, 시간이 기분 좋게 흘러간다. 남편과 마주 앉아 겨우 뜨거운 떡국 한 사발과 김장 김치 한 접시를 나누는데도 마음이 차오른다. 이런 작은 것에 나는 행복한데, 남편도 행복할까? 남자와 여자의 행복은 다를까? 나는 나이 들어서도 알콩달콩 살고 싶은데, 그는 그건 우리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거란다. 그런 게 어디 있담. 나는 인생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가를 한껏 느껴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시골에서는 그런 아름다운 동화가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